자리 지키기, 노인의 룰

  우리가 스스로 온전해질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연습을 한다.

  일이 생겨 찾아간 유년 시절 집골목에선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따라서 전세금이 올라가고 동네엔 노인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올해로 30년이 된 이발소를 운영하던 노인은 말끝마다 자신의 이발 신조를 자랑하듯 늘어놓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곳은 이발소가 아니었다. 좁은 골목을 더 좁게 만들던 평상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지키던 노인들 또한 사라졌다. 나는 그 골목에서 가장 어린아이에 속했다. 노인들은 자신이 온종일 꼼지락거리던 주전부리나 시원한 식혜를 주곤 했다.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고 그들이 이 골목을 지켜주는 것만 같았다.


  학원이 늦게 끝난 밤은 두려운 것이었다. 좀체 켜질 생각을 않는 가로등이 어두운 골목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고양이와 까마귀가 파먹은 음식물 쓰레기에서 흐르는 액체의 냄새가 지독했다. 코를 막고 걸으면 앞이 보이지 않았고 코를 막지 않으면 눈이라도 감고 싶었다. 거나하게 취한 행인들이 종종 몸을 치고 지나가며 욕설을 내뱉었다. 지가 먼저 쳤으면서. 생각은 해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 골목의 불문율이고 새로운 변화를 피하는 룰이었다. 코를 막는지 눈을 가리는지 모를 걸음이 멈춘 곳엔 골목이 나온다. 그 장소는 다른 곳보다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은 냄새가 풍기는 것도 아니었다. 골목 끝에 골목이 나왔고 결국 그 골목은 새로운 골목으로 이어졌다. 내가 사는 집이 있는 이 골목엔 여름밤의 후끈함을 견디지 못하는 노인들이 집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들은 하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몇 번이고 반복했던 이야기지만 중간을 생략해 새로운 이야기처럼 만들었다. 자신들을 만나러 오지 않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군데군데 끼워 넣어 또 새로운 이야기처럼 만든다. 그렇게 불면을 이기기 위해서 서로 졸릴 때까지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었다.


  꺼져가는 가로등의 빛을 받는 노인들의 주름과 날파리를 쫓는 거죽밖에 남지 않은 손. 노인들은 나에게 학교는 잘 다니냐 묻고 밥은 먹었냐 묻는다. 이어서 무슨 얘깃거리가 없냐 묻고 날이 덥지 않았냐 묻는다. 골목에 사는 노인들은 골목 밖으로 나올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붉은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노후한 건물들 사이로 노인들은 자신들의 룰을 지키며 산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제1 법칙은 집에서 무얼 하는지 물어보지 않는 것이었다.


  요 며칠 노인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골목의 입구를 지키는 '수뻐마켙'의 노인이 갑작스럽게 쓰러져 엠뷸런스에 실려 갔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노인이 어떤 지병으로 쓰러졌는지 모르지만 밤만 되면 노인과 함께 살던 노인의 울음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두 노부부는 철자마저 틀린 '수뻐마켙' 간판을 걸고 그곳에서 산다. 겨울에는 전기장판을 켜고 여름에는 선풍기를 켠다. 부모님이 라면을 사 오라고 하거나 쓰레기봉투를 사 오라고 하면 줄곧 가곤 했다. 노인은 항상 돈 계산에 서툴렀고 눈에 백내장이 있어 앞을 잘 보지 못했다. 그러면 나는 그 앞에 서서 다시금 돈 계산을 하곤 하는 것이었다. 몇 번 정도는 경찰이 찾아와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지 말라고 경고를 하였지만 노인은 미성년과 성년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노인은 전기장판도 선풍기도 켤 수 없었을 것이었다.


  죽어가는 화분과 그것을 파헤치는 고양이. 역시나 꺼져가고 있는 가로등 사이에 있는 다른 노인들을 생각한다. 누군가 아프거나 죽으면 며칠 정도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그것은 노인들의 다른 노인들을 위한 위로였고 제2 법칙이었다.


  자리매김하는 것. 누군가를 위한 자리 지키기가 아닌 골목을 떠올린다. 노인들은 골목을 지켜주는 것이 아닌 견뎌내고 있던 건 아닐까. 내가 아는 한 노인들은 슬픈 말을 하지 않았다. 노인들이 나오지 않던 겨울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심란할 때마다 사는 곳의 골목길을 걷는다.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 다시 왼쪽으로, 점점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자리를 견뎌내는 또 다른 노인들이 보인다. 어쩌면 그런 순간들이 삶이 자리를 지킬 수 있게끔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멀어지지 않는 공간을 기억 속에서 지켜내는 것.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더라도 우리는 기억을 가지고 우뚝 서 있는다. 그곳에 우리는 서있을 수 있다.



Editor  오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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