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새하얀 캔버스를 바라보는 것이 예전부터 좋았다. 나는 그것에 개인적으로 ‘캔버스 참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지만 결코 공백이 아니다. 그 새하얀 화면에는 와야 할 것이 가만히 모습을 감추고 있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윽고 하나의 유효한 실마리를 향해 집약된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았다. 존재와 비존재가 조금씩 섞여드는 순간.
「기사단장 죽이기, 문학동네, 2017, 무라카미 하루키」
지난여름이었다. 날씨는 제법 더웠지만, 그래도 밖에 앉아 고즈넉이 책을 넘기기 좋은 날씨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아주 우렁찬 매미 울음소리 사이로 들리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책을 읽는데 퍽 듣기 좋게 들렸었다. 그러다가 올려다 본 하늘에는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빛이 책 종이에 닿아 왠지 모를 따스함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씩 귀를 간지럽히는 모깃소리가 귀찮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책을 읽기 딱 좋은 날씨였다. 책장을 빠르게 넘기는 편이다. 읽는 속도가 빠르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그 결말에 빨리 닿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글쓴이의 생각을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내 나름대로 무언가 남을 것이니, 굳이 애써서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편이다. 문장이나 단어가 보기에 어려워도 그것의 정의나 의미 따위를 결론짓지 않으려고 한다. 다 이유가 있어 쓴 문장일 것이라 전제를 내리고 이야기를 따라 그저 탐미할 뿐이다.
하지만, 그 여름에 마주친 이 문장은 좀처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존재와 비존재가 조금씩 섞여드는 순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지만, 문득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내려갔지만, 이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존재 存在와 비존재 非存在. 과연 이것이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일까? 지금 내가 가지는 생각은 비존재일까, 혹은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 실재 實在 하고 있는가? 그 생각의 끝에서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져 그 우렁찬 매미 울음소리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무런 대답도 내리지 못해 몇 달이 지나서야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있 었다.
’존재와 비존재가 조금씩 섞여드는 순간.’ 어쩌면 그 순간은 짙은 사색 思索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끝도 없는 생각이라는 우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며 증오하는지, 또 나는 누구이며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또 동시에 이기적일 수도 있는 이 무한한 생각들은 결국 그 궤도를 따라 이윽고 하나의 실재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 그렇게 우리는 사색 思索을 하며, 사유 思惟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번 PLAYL1ST 플레이리스트는 사색 思索과 사유 思惟의 음악이다. 그저 흘러나와 사라지는 것이 아닌 당신이 가지는 그 생각의 이미지가 될 수도 있는 이 음악이 당신의 사색 思索과 사유 思惟를 돕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