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다가와 묻는다. '별일 없었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별일 없이 살아요'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평범하게끔 하루를 직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 그것을 위해 요리를 한다. 어떤 메뉴를 먹을지 고민하고 재료를 선별한다. 나는 되도록 남지 않게끔 소량만 산다. 채소를 다듬고 불을 켜고 굽거나 지진다.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처리한다. 다음 식사를 위해 일을 나간다. 일련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쉬운 건 없고 이유를 갖고 움직여야만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별일이 없는 건 아니다.
요새는 밖에 많이 나가지 않는다. 일이 있거나 하는 날만 나가지만 대게 그런 날은 외박하곤 한다. 집에 있는 날에는 종종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는다. 소파가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에 나는 좌식 생활을 주로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발하면서 나가기가 꺼려져 집에서 좌식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필요해져 구매하게 되었다. 소파가 생기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앉아서 생각하는 틈이 많아졌다. 나는 땅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생활하는 게 맞는 인간이라고 여겼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소파에 앉아서 지내는 때가 길어지다 보니 멍하니 천장을 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문득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혼자 살면 티비를 켜 놔. 그러면 외롭지가 않아.' 하지만 나는 티비가 없었고 갑작스러운 지출을 맞이할 정도의 지갑 사정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티비가 있는 삶에 대해서 골똘히 상상하곤 했다. 나는 집에서 음악이 되도록 끊기지 않기를 원했다. 음악 재생이 멈추면 공간은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그렇게 되면 귀가 예민해져 냉장고 냉매가 도는 소리나 바깥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 혹은 윗집에 사는 주인집 아이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티비를 켜놓고 무언가를 보는 삶.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무한히 송출되는 소리의 시간이 탐났다.
당근 마켓을 열심히 뒤져보며 티비를 찾아 싼값에 들였다. 소파 앞에 티비를 둔 날엔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사람답게 사는 삶에 한 발자국은 안되더라도 반보 정도는 다가선 것 같았다. 요즘 나는 티비 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싼 맛에 티비를 산 터라 스마트 티비는 아니어서 구글캐스트를 사서 달아놓고 영상을 주로 본다. 밖에서 일하는 날이나, 나가 있을 때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볼 생각에 두근거린다.
하지만 티비를 보는 날에는 규칙이 있다. 밤 중에는 산책하는 것이다. 티비를 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상에 올려둔 캠코더에 영상이 찍혀 있었다. 만지다가 실수로 촬영을 끄지 않아 녹화된 것이었다. 멍하니 티비를 보는 나는 외계인 같았다. 허리가 아플까 봐 정자세로 앉아 보곤 했는데 얼굴에 티비에서 비치지는 빛들이 닿았다. 각양각색의 색이 얼굴에 다가왔고 무표정한 내 얼굴이 여러 빛깔로 지나갔다. 그 뒤로는 밤 산책하러 종종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