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공간 하다 보면 이따금 마음이 답답해진다. 정작 어떤 자리에 매여 있는 것 자체가 심란할 때가 온다. 내가 있는 자리가 맞는 지 혹은 틀릴 지 걱정하는 시간은 곤혹스럽다.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아도 계속해서 운행되는 전철처럼 나를 둘러싼 것들이 움직인다. 시간대라는 철로는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내 자리는 이동하지만 나는 눈치채기 어렵다.
골목길에는 여러 방향이 있다. 삼거리와 사거리. 막다른 곳에서 두개의 거리. 내가 자주 걷는 골목은 여러 방향으로 꺾인다. 늘 걷던 만큼 멀리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쉽지가 않다. 내가 덜어서 움직일 수 있는 바운더리에서 생활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거다.
입으로 하나 둘, 하나 둘 소리를 내며 걸었다. 바람은 불었지만 괜히 습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봄 날씨였다. 양배추 하나, 어묵 둘, 미림 하나, 과자 둘, 하나 둘, 하다 보면 어떤 것이 하나이고 어떤 것이 둘인 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메모장에 적어 놓으면 편하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쯤은 누구나 알지만 막상 맞닥뜨리게 되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묵이 하나가 되던 미림이 둘이 되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쟁여두고 살면 언젠가 쓰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공간에는 사물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마트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마트가 문을 닫았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있었던 마트는 폐점했고, 집 앞 편의점에는 사고자 했던 물품들이 있지 않았다. 주저 앉은 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전봇대 옆에 세워진 수레는 가로등 불빛을 한껏 머금었다. 가득 들어찬 폐지는 봄비 때문에 누구보다 찐득하게 물기를 머금고 서로 치대고 있었다. 저건 들 때 더 무거우려나, 비를 맞은 것도 아니고 그냥 눅눅해졌을텐데 말이다. 들면 찢어질 것이고, 양손으로 잘 받쳐야 그나마 모양새를 유지할 것이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고 이따금 멀리서 들리는 개가 짖는 소리나, 자동차 엔진음 밖에는 없었다.
온전해질 수 있는 공간은 막다른 곳에 있다. 골목을 넘어 다른 길로 갈 수 없음을 알고 앉아있을 수 있다. 내가 밥을 먹는 자리보다 더 편안한 공간이 있다면 어디일까. 걷는 연습을 시작한다. 자리 밖으로 나갈 때가 다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