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보슬비가 종일 오고 있다. 푸른 하늘보다는 전체적으로 무채색이 가라앉은 도시의 풍경이 퍽 나쁘지는 않다. 이르게 핀 벚꽃들이 물방울에 맞아 땅에 떨어지고 있다.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곧 흐른다. 꽃잎들은 물줄기를 타고 하수구로 사라질 것이다. 하수구로 떨어지는 꽃은 어디까지 흐를 수 있을까. 집에 오는 길에 죽은 지렁이를 보았다.
오랜만에 본 지렁이는 흙에서 나와 아스팔트 길 위에서 죽어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지렁이들을 지층에서 지면 위로 올라 온다. 피부 호흡을 하는 지렁이는 땅속에 스며든 물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려워진다. 새로운 세상에는 더 많은 물이 가득했고 지렁이는 숨을 쉬지 못해 죽는다. 온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물이 차오르는 상상. 숨이 차지 않을 장소, 비를 피할 장소를 찾는다.
처마의 기능을 하는 덮개가 없는 건물이 많아진다. 비는 아닌 밤 중에 내린다. 길고양이와 길개는 몸을 녹일 곳을 찾는다. 겨울의 냉기가 채 가시기 전에 친구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학교 둘레길을 걷기 위해 쪽문으로 들어서자 흰 개가 보였다. 개는 외길의 가운데 서 있었고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쪽으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목줄도 없이 길에 서 있는 개를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지나쳤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목줄을 하지 않고 산책을 하는 주인이 있나 보다 했다. 산책을 위해 작은 개를 지나치려 하자, 개는 우리가 가는 길을 앞서 걸어갔다. 짧은 다리로 총, 총, 총 걷던 개는 우리와 거리가 멀어지면 돌아본 채로 기다리곤 했다. 나와 친구는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어 개를 따라간다. 빙판길에 넘어진 노인의 강아지 일 수도 있고, 우리를 그쪽으로 인도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말라보이는 개는 언덕을 넘어 학교 뒷산의 등산길로 올라갔다. 우리는 기묘하다고 생각했지만, 계단을 몇 칸 오르고 뒤를 돌아보는 개를 보고 따라갔다. 한참을 올라가자 개는 무성한 덩굴 아래 구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몸집이 개보다 컸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정말 영리한 개라면 들어가지 못한 우리를 찾기 위해 다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개는 다시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