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지키기, 목련을 상상하는 녹음

  우리가 스스로 온전해질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연습을 한다.

  목련이 가득 피어있다. 목련은 나무의 핀 연꽃인가. 목련은 필 때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사진을 한 장 찍겠습니다. 옛날 휴대폰은 촬영음을 바꾸는게 가능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나를 찍어주던 소리는 치~즈. 할아버지가 나를 찍어주던 소리는 김~치. 그랬던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봄이 되면 늘 뒷산에 가서 쑥을 캐러 가곤 했는데 참 싫었다. 어렸을 때 학교 앞에는 큰 목련 나무가 있었다. 오르막길 초입에 있던 나무에는 봄이 되면 흰 꽃이 만발했다. 좋은 향기가 나기도 하고, 꽃이 바나나를 엎어놓은 것만 같았는데. 떨어지면 똥이 된다. 바나나를 오래 방치해둔 것처럼 땅에서 검게 썩어 사라진다. 다시 걷겠습니다. 밤에 남의 집에 펴 있는 꽃을 오랫동안 보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으면 오해를 받기 쉽다.


  여기는 초등학교의 옆길입니다.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에 알알이 박힌 조명이 밝습니다. 이곳은 천천히 지나가야 해요. 빠르게 지나가면 안됩니다. 초등학교 옆에는 꼭 피아노 학원이 있다. 피아노 학원의 불은 꺼져 있지만 가로등은 켜져 있다. 주황 보다 옅은 빛이 골목 한 켠에 있다. LED를 감싸는 케이스에는 날벌레의 시체가 많다. 분명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게 꽉 닫은 공간 일텐데, 항상 벌레가 많다. 저것들은 청소할 때가 되면 삐쩍 말라 있습니다. 낮에는 비와 바람이 통하지 않고, 밤에는 가로등의 불빛만 있다. 날벌레는 빛을 보면 따라간다. 저기서 죽은 벌레는 죽어서도 하루 종일 밝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차2'. 지정주차구역에 한 곳이 비어있습니다. 여기는 두 개의 주차장 밖에 없습니다. '차1'에는 낡은 포터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차가 긴 탓에 트렁크가 인도로 삐져 나와있습니다. 세븐일레븐의 간판이 바뀌었습니다. 단장이 잘 되어진 모습이다. 여기는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아서 문을 긴 시간 동안 닫았습니다.

  다시 걷겠습니다. 문을 닫은 꽃집입니다. 밖에 내놓은 화초들은 안으로 들이지 않고 쇠창살을 둘러놨습니다. 꽃은 가둬져 있습니다. 저 친구는 제 집에 있는 친구와 같은 친구입니다. 같은 친구라고 하기엔 조금은 다릅니다. 우리 집 스파티는 조금 더 작습니다. 옆에는 율마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스파티의 친구로 율마를 데려왔습니다. 율마는 환기를 잘 시켜주어야 해서 문 열어두면 스파티는 추워합니다. 그렇다고 문을 열지 않고 안에서만 율마를 두면 율마는 뿌리가 썩어 죽고 맙니다. 두 사람 사이의 일이 원만히 해결되길 바랍니다. 장사가 끝난 꽃짚 앞에서 계속 중얼거리니까 동네 할아버지가 이상한 눈초리를 보냅니다. 다시 걷겠습니다. 개나리. 화분에 핀 개나리. 양군. 양군만 보면 고연옥선생님이 떠오른다. 지금은 포차가 되었다. 그 뒤로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석계 쪽에 순천집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은 막걸리를 시키면 양은주전자에 담아준다. 그리고 대야에 얼음을 얼려 그 위에 주전자를 올려준다. 그렇게 되면 언제 먹어도 시원한 막걸리가 된다. 전 종류도 맛있고, 무침 종류도 맛있었다. 맛있었나. 무침을 먹을 때는 취했어서 기억이 안납니다. 음, 분위기가 좋다. 사장님이 전라도 분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경상도 분이었다. 경상도에도 순천이 있었나. 갑자기 왜 막걸리 집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집 앞 골목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네 가지입니다. 떡볶이집 옆길, 부동산 옆길, 주점 앞 골목, 밥집 앞 골목. 조금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녹음을 하니까 좀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어서요. 음, 그냥 늘 가던 길로 가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ditor  오성민



e-mail   inthewoodsalone@daum.net 

instagram  @dh_tjdals_


관련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