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부유하는 서러운 자들의 노래

  땅콩회항, 아파트 경비원의 극단적 선택, 유명 연예인의 갑질 등. 그간 ‘갑질’이라는 키워드는 큰 화두였다. 현재진행형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른바 ‘갑질 문화’는 고질적인 문제이다. 갑이 있다면 응당 을도 존재할 것. ‘을 중의 을’에 대해 유쾌하게 조명하고 있는 연극이 여기 있다.

  극작가 윤미현은 2012년 데뷔 이래로 꾸준히 회색지대에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써왔다. 가령 “노령화 사회의 노인, 가진 것 없는 서민, 이민자” 등. 구조적으로 소외됐던 서민들에 대한 이야기, 다른 말로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주목인 것.

 

  연극 <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는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갑질을 밥 먹듯이 당하는 경비원 김아무개 씨(이하 김씨)와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다. 김씨는 주민들의 외제차를 닦고, 먹던 바나나를 받는 등 부당한 일을 겪는다. 연극의 첫 장면에서, 기자는 갑질을 고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김씨를 설득한다. “양심”있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것이라며. 하지만 김씨는 기자의 요구를 거절하고 기자는 몰래 김씨의 사진을 찍어 뉴스에 보도한다. 사실 김씨가 기자의 요구를 거절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김씨는 IMF(1997년부터 유행했던 외환위기)로 실직한 이후 생계유지를 위해 횟집, 정육점, 슈퍼, 찜닭집, 치킨집까지 온갖 장사를 전전해왔기 때문이다. 실패의 격랑을 경험했던 김씨는 서러울지언정 경비원이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더욱더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보다 확대된 이미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김씨의 서사 외에도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던 김씨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김씨의 아내는 콜라텍 주방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하고 치매를 겪게 된다. 그리곤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중학생 시절 머리인 양갈래로 묶기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다소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이지만, 재치 있는 노래의 등장으로 인해 연극의 분위기는 유쾌해졌다. 담백한 가사와 무대 하수에서 들리는 기타 소리는 ‘장기하 밴드’를 떠오르게 했다. 배우들은 대개 말하듯이 노래했다. 아무리 삶이 퍽퍽해도 노래만큼은 담담하게.

 

  음악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부동의 마음을 두드리며 유하게 만들 수 있는 힘. 음악이 관객의 상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음악은 멈춰있는 것들을 움직이게 한다. 아주 능청스럽고도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이 작품은 단순히 주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수면위로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노래가 각자의 일상에 끼어들고, 벽이 허물어지고, 마침내 관객들은 음악의 원리에 동조하게 된다. 음악이 계속되는 것처럼 삶도 그렇게 계속되라는 응원인 걸까? 아마 그런 응원과도 같은 음악은 이 작품이 저널리즘이 아닌 ‘연극’이 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연극 예매


Editor  정다현



e-mail   luvmyself99@naver.com

instagram  @from_hyun_to_u


관련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