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극장, 환대
전주에 있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건 서울이라는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났다는 점이었다. 객지에 있음에도 나는 편안함을 느꼈는데, 매일매일 오로지 영화만 보고, 글을 쓰고, 예술에 대해 생각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극장에 입장할 때마다 QR 체크를 하는 등의 반복적인 행동이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었다. 이렇게 며칠간 낯섦과 안온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영화관의 냄새와 분위기,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조용해지는 사람들의 숨소리. 극장이란 공간에서 내 온 감각이 살아 숨쉼을 느꼈다. 커다란 스크린의 안과 밖에서 꿈틀대는 삶의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 하면, 행복감에 벅차오를 때도 있었다.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서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또, 극장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을 보며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참 애틋하다고 느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전주 현장에서 영화를 즐길 수 없더라도, OTT 서비스 플랫폼 웨이브를 통해 영화가 상영되었다. 이것은 올해 영화제 슬로건과도 맞닿아 있다. 손쉽게 원하는 장소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OTT 시대 도래 후, 현대 관객들을 고려한 지점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의 극장 상황과도 상통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직접 극장에 갈 수 없더라도, 온라인 환경에서 영화는 계속 된다는.
하지만 전주에서 영화는 늘 계속되었다. 극장 1층의 상영시간표에는 sold out 스티커가 즐비하게 붙어있었다. 극장에 가면 매일 새로운 영화가 나를 기다렸고, 날마다 다른 영화와 조우했다. 매번 다른 영화적 세계 안에서 허우적 대기를 일삼았다. 하루는 내가 보냈던 10대에서, 다른 하루는 내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날들에서, 4월의 제주에서, 베케트의 전언들에서 등 시간의 실체를 잊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끝난 뒤 ‘영특한 클래스’, ‘관객과의 대화’, ‘Online GV’ 등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감상들을 읽을 수 있었다. QR 코드를 통해 질문을 받고 창작자들과, 혹은 영화에서 파생된 담론들의 전문가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관객들과 창작자들이 영화를 감상하고 고민하는 열띤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