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전주에 다다를 당신께

전주에서 떠나온 우리는 어느새 내년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의 당신은 우리가 되어 5월을 만끽할 것이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필자는 영화제 속에서 ‘우리’와 ‘당신’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영화관에서 몇 칸씩 띄어 앉은 관객들은 단 한 번도 마주 보지 않는다. 상영 시간에 쫓겨 황급히 들어온 때부터, 스크린 위에 영화가 투사되고 다시 불이 켜지는 그때까지. 더군다나 이젠 마스크로 반쯤 가린 얼굴 때문에 모두가 비슷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서로 응시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존재들을 ‘우리’라고 규정 지을 수 있을까?


  올해의 전주는 그렇다고 말한다. 골목 한 귀퉁이를 스크린 삼아 거리에서 영화를 틀 때, 그저 스쳐 가는 행인들도 관객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상영 시간보다 일찍 온 관객들을 위해 온라인 관객 행렬이란 자그마한 이벤트도 진행했다. QR 코드를 통해 관객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완성된 관객의 분신은 화면에 있는 객석에 앉아 화면 밖의 다른 이들과 마주한다. ‘당신’에 머물던 관객들은 이 순간 ‘우리’로서 서로를 조우하고 인지한다.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기적 같은 연대감을 느끼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미처 끝내지 못했던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당신에게 이번 전주의 영화를 그려주는 작업. 이 글에 열거된 영화들이 당신에게 희미한 상을 맺게 만든다면, 마침내 당신은 전주에 도착하리라 확신한다.

국제 경쟁


<저항의 풍경> Dir. 마르타 포피보다


  이번 전주의 국제 경쟁은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전체 10편의 영화 중 6편의 영화가 여성 연출자들의 작품이었고, 작품상과 대상 모두 그들이 거머쥐었다. <저항의 풍경은> 작품상을, <파편>은 대상을 받았다. 두 작품은 ‘과거사의 한 지점’이 동시대에 접촉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저항의 풍경>은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레지스탕스였던 소냐의 증언을 현재의 공간 위에 정교하게 겹쳐낸다. 역사적 사료에 의존하여 과거를 소환하는 다른 다큐멘터리와 달리, <저항의 풍경>은 동시대의 이미지들 속에서 생존의 일대기를 발견해나간다. 두 장면이 지속해서 겹쳐지며, 끈질기게 잔상을 만들어내는 영화의 방법론은 생존하는 것이 곧 투쟁하는 것임을 밝히는 소냐의 증언과 닮아있다. 

영화보다 낯선


<이리로 와> Dir. 아노차 수위차꼰퐁


  전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은 단연 ‘영화보다 낯선’이다. 실험/전위영화들을 일반 관객들에게 소개하며, 영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영화제의 태도를 반영하는 섹션이다. 그 중 아노차 수위차꼰퐁의 <이리로 와>는 올해 ‘영화보다 낯선’ 섹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작품이다. 영화는 극단의 네 배우가 여행을 가고, 두 여인이 캠핑을 떠났다가 한 명이 실종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를 다룬다. 외피는 그저 여섯 청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영화는 태국의 아픈 역사 중 하나인 ‘죽음의 철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리로 와>의 빛나는 지점은 서사가 아닌 영화의 방법론에 있다. ‘감각만으로 역사적 기억을 환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영화는 끝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경쟁


<혼자 사는 사람들> Dir. 홍성은


  팬데믹은 고립을 종용한다. 고립은 고독을 잉태한다. 어쩌면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은 현재와 가장 적합한 영화가 아닐까? 혼자가 편한 콜센터 에이스 진아에게 불청객과 같은 타인들이 그녀의 세계에 침입한다. 그녀는 문득 홀로 지내는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고립된 현대인의 초상을 수많은 화면 속으로 나열하며, 고립의 공포와 연대의 공포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다수의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공승연의 스크린 데뷔작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5월 19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ditor  최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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