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주, 여성 영화의 만개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리뷰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글을 읽기 전 <‘지금 여기 전주’에서 ……>을 선행하시길 추천합니다.


   지난 8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 시대의 영화제 개최’라는 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철저한 방역과 온오프라인 병행 프로그램 등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예술이 계속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스페셜 포커스’ 섹션 또한 기억할만한 부분이다. ‘스페셜 포커스’는 해마다 중요한 화두를 따라 그와 관련된 영화를 선보인다. 올해 스페셜 포커스 부문에선 코로나19와 여성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유효한 화두를 영화로써 성찰하는 것이다. 이번 스페셜 포커스 부문은 총 두 개의 섹션으로, ‘스페셜 포커스: 코로나, 뉴노멀’과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라는 제목을 내세웠다.


   영화제가 주목한 키워드만큼 눈에 띄는 건, 늘어난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전체 상영작에서 여성 감독의 작품은 약 41%였다. 줄곧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영화사에서 오늘날 다시 여성 감독을 조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전주국제영화제는 여성영화 전문 OTT 플랫폼 퍼플레이와 협업해 ‘한국 여성감독 릴레이 특별전’을 연다. 5월 21일까지 ‘전주가 퍼플레이’와 ‘인디펜던트 우먼: 당신의 처음’에서 영화제 상영작 외에도 한국 여성 감독의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글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영작 중 주목해봐도 좋을, 여성 감독들의 영화  세 편의 리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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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쟁’_ <저항의 풍경>

마르타 포피보다/ 세르비아, 프랑스, 독일/ 다큐멘터리/ 95분/ 2021


  전쟁사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잊힌 지 오래다. <저항의 풍경>은 전쟁을 여성의 관점으로, 생존이 곧 투쟁이 되는, 몸의 감각들로 소급해내는 전쟁 다큐멘터리다. 이야기의 주인공 97세 소냐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끈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여성 파르티잔이자, 반파시스트 운동가였다. 생애에 걸친 소냐의 투쟁은 감각에 관한 것이기에 재현하기 어렵다. 마르타 포피보다 감독은 이를 소냐의 몸에 새겨진 풍경으로 전쟁을 증언-재현해낸다.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형식과는 다르게 땅에 비가 내린다든가, 숲과 집의 풍경 등 일상적인 장면들이 겹쳐진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이 풍경들이 소냐의 얘기와 중첩될 때 일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한다. 영화에선 이런 가사의 노래가 들려온다. “우리는 들판을 덮고 있는 붉은 양귀비꽃” 본래 붉은 양귀비꽃은 전쟁과 기억에 관련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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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쟁’_ <성적표의 김민영>

이재은, 임지선/ 한국/ 픽션/ 94분/ 2021


   관계가 유지된다는 건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성적표의 김민영>은 청주의 한 여고 삼행시 모임에서 친해진 단짝 친구들 간의 이야기다. 대학에 가지 않고 고향에서 테니스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희는 어느 날 군대 간 서울 오빠 집에 머물게 되었다는 민영의 초대에 서울로 놀러 간다. 하지만 민영은 정희와 시간을 보내지 않고, 학점 정정 메일을 보내는 데에 매진한다. 정희는 성적 정정을 위해 몰래 집을 떠난 민영의 집을 방황한다. 그러다 정희는 민영의 일기를 보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희는 민영에게 성적표를 남기고 떠난다. 민영과 관련된 과목들에 성적이 매겨있다. 마지막은 ‘한국인의 삶’ 과목, 성적은 F. “너가 한국인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사람을 쫒는 사람들. (중략) 앞으로 뭘하든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덜 절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넌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우리는 친구이기에, 현재 너무 다른 상황에 처해있어도 나는 우리의 다름을- 너의 무례를 포용하겠다, 로 받아들여졌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한국인으로서, 10대의 우정을 겪은 한 사람으로서 감정들이 공감 갔기에 뭔가 엉성하지만 그자체로 위로였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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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 _  <워터멜론 우먼>

셰럴 두녜이/ 미국/ 픽션/ 85분/ 1996


   <워터멜론 우먼>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셰럴은 아무도 제작하지 않았던 흑인 여성 배우에 대한 영화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심한다. 갖가지 아카이빙 기록들로써 1930-40년대에 희화화된 인물로 그려졌던 흑인 여배우들의 역사를 좇는다. 그중 ‘워터멜론 우먼’ 페이 리처드의 기록을 찾는다. 페이 리처드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그녀가 레즈비언임을 알게 되고, 셰릴과 페이 리처드는 여성, 흑인, 레즈비언 등 정체성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진다. 보여지는 대상에서 말하는 대상으로서의 전환. 셰럴 두네이 감독은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허구와 진실을 넘나들며 “때로는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야”함을 역설한다. 우리는 수면위로 떠오르기 위해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언어, 이야기, 역사는 시작되었다.


Editor  정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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