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무너지지 않은 집에 대해서 

  다 허물어진 집에 대해서 생각한다. 아마도 아찔하게 뼈대만 남은. 그 이미지는 내가 이문동을 지나치다 본 집일 수도, 영화 <데몰리션>에서 본 집일 수도, 백수린 소설(<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을 읽고 상상한 집일 수도 있다. 이 집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폐허가 되기 전에 세워진 내면의 욕망과 분노와 고독 등의 감정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선 어떠한 것도 상관없다. 누군가의 기억과 마음 속에 폐허의 이미지가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번듯한 외연없이 남은 폐허는 쓸쓸하고 외로울 테니까. 


  사무엘 베케트 <해피 데이스>는 누구나 느끼는 폐허의 이미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위니는 이유없이 광야의 언덕에서 파묻혀 있다. 남편은 자신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잠만 잔다. 위니는 ‘오래된’ 날들을 회상하고, 자신의 ‘오래된’ 물건들에 집착한다. 그리고 다시 다음 날에 잔인하게 내리 쬐는 햇살과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다. 행동은 반복된다. 원치 않는 시간에 잠에서 깨고… 지난 날들을 회상하고… 남편에게 말을 걸고… 


  위니는 원하는 시간에 잘 수도, 일어날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불평불만하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위니의 주변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이는 베케트 작품의 모든 인물들이 겪는 사건이다), 그를 둘러싼 시공간은 느리고 무겁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니의 독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삶의 고통을 버티며 이겨내려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이 땅 속으로 더 깊게 매몰되어 가는 비관적 상황에서도 ‘행복한 날’이라고 외친다.

  큰 사건을 겪어 상실감을 느낀다고 해서 고독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린 이미 안다. 나름대로 우리는 이미 고독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지나치게 안온하고, 그 안온함이라는 집은 무엇 위에 세워진 것일까. <해피 데이스>는 일상의 안온함, 즉 안온을 넘어 권태로까지 확장되는 삶의 부조리성을 잘 보여준다. 


  내 맘 속의 그 집은 여전히 폐허다. 베케트는 그 집이 다시 세워질지 알려주진 않는다. 하지만 위니는 끝내 모래로 뒤덮인 언덕에, 그니까 자신의 일상에 파묻히게 될 것 같다. 나는 그 집을 다시 세울지, 폐허인 상태로 유지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다 무너지지 않은 집을 다시 한번 쳐다보고, 해체하고 분리하여 그 집을 다시 세우고 싶다.


Editor  정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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