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각형의 중심으로 가기 위하여

  우리는 삶에서 많은 진실들과 맞닥뜨린다. 때론 그 진실의 무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무거워서 회피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오이디푸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의 모습으로 운명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존엄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대략 스토리는 이렇다. 오이디푸스가 왕인 테베에 역병이 돌고, 오이디푸스는 그 역병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과 얽힌 진실을 알게 된다.


  부친살해, 근친상간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오이디푸스 왕>이 오랜 세월 명작으로 불리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운명의 진실을 안 후 오이디푸스의 행동이다. 그 운명이라는 건 우리가 저항하거나 피할 수 없다. 허나 그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운명에 맞서 직면함으로써 그 운명에 다시 대항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참혹한 진실을 깨닫고 바로 자신의 눈을 찔러 광야로 떠났다. 그가 운명에 맞설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오늘 얘기할 작품은 우리에게 드니 빌뇌브의 감독 영화 <그을린 사랑>(2011)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알려졌다. 영화의 원작은 레바논계 캐나다인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Wajdi Mouawad의 희곡 <화염 Incendies>(이하 화염)이다. <화염>은 <오이디푸스 왕>의 모티프로 쓰여진 작품이다. <화염>의 이야기는 일관 침묵을 지키던 엄마의 유언장으로 시작된다. 엄마 ‘나왈’은 쌍둥이 자녀 ‘시몽’과 ‘잔느’에게 각각 편지를 남긴다. ‘잔느’는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가야하고, ‘시몽’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형을 찾아가 편지를 전해야한다. 그렇게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의 흔적을 좇아 엄마의 고향 중동으로 떠난다.


  무대는 잔느와 시몽이 좇는 ‘현재’와 나왈이 쌍둥이에게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즉 나왈이 평생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장면들이 교차된다. 과거 나왈은 잔느와 시몽을 낳기 전 종족분쟁으로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나왈은 15년 이상 지속된 전쟁(레바논 내전)을 마주하고 나왈은 그 과정에서 감옥에 들어가 강간을 당한다. 잔느는 엄마 ‘나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전쟁의 폭력과 역사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엄마의 기억까지.


  극의 초반에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잔느는 강의 시간에 그래프 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A부터 E까지 명명된 꼭지점으로 이루어진 다각형 K안에서, 이것을 가족의 평면도라고 치자면, 꼭지점에는 가족 구성원의 이름이 들어간다. 가령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이 평면도에서 꼭지점들이 보고 닿을 수 있는 점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호를 그려 평면도 위에 가시성 그래프를 그린다면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나왈의 할머니 나지라의 말처럼 나왈이 “읽고 쓰고 셈하고 말하는 걸”을 배웠던 것처럼, 잔느 또한 그랬다. 셈하고 읽고 말할 줄 알았던 잔느는 자신의 삶을 구축해주었던 명확한 기하학으로부터 떨어져 엄마의 과거를 좇는다. 그녀의 엄마가 이끈 다각형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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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겹이 쌓였던 진실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관객석은 적막했다. 1+1의 결과값이 2가 아닌 1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빈 무대에선 “이제 우리 함께 있으니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울려 퍼진다. 나왈은 분노의 흐름을, 자신의 사랑으로서 덮고자 했다. 마치 자신이 침묵으로 진실을 덮었던 것처럼. 이야기의 도착지에서 시몽과 잔느, 그리고 형과 아버지는 다같이 나왈의 마지막 편지를 읽음으로써 다각형의 중심에 도달한다. 침묵은 깨졌다. 침묵은 더 큰 앎을 끌어오고, 사랑으로 인해 침묵보다 더 큰 앎이 무대 위에 드리운다. 마지막으로 존재론적인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어느 다각형에,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5월 25일부터 30일까지 진행했던 신유청 연출의 연극 <그을린 사랑>은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7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 3회의 공연으로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다가간다. 자세한 내용과 티켓 예매는 홈페이지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또 한번의 공연에서 <다각형의 중심으로 가기 위하여>의 이야기를 느껴보자.


Editor  정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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