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그냥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친구에게 낮술을 마셨냐며 쑥스러운 마음을 애써 짓궂게 감추었습니다. 오랜만에 전화를 하는 것이라 하고 싶은 말도 해주고 싶은 말도 서로 많았을 터인데, 낯 뜨거운 감정은 뒤로하고 5분 남짓한 짧은 통화를 마쳤습니다. 10대부터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온 친구는 많지 않아서인지, 이런 전화 한 통은 어쩐지 이 세상에 내 편이 있는 기분이랄까요. 길이는 짧지만 아주 따뜻한 통화였습니다.
문득 어느 시인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지방에 허름한 술집이 있었는데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왔고, 그 시간만큼 이곳에 청춘을 바친 단골들이 많은, 단골은 또 다른 단골을 데려오고, 내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며 아무나 데려오지 않는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호기롭게 데리고 왔지만 알고 보니 그 사람도 이곳의 단골이었다는 훈훈한 에피소드도 있는 그런 아주 소소하지만 신비로운 술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집 주인장이 갑작스러운 폐업 소식을 전하였는데 그곳의 단골들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내 청춘을 바친 바로 이곳이 없어진다니, 이곳에서 낸 술값만 해도 족히 집 한 채를 될 거라며, 폐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만 이미 주인장의 마음은 돌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요. 가게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사 온 술을 길바닥에 펼쳐놓고 술판을 벌인 것이지요. 주인장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보다 못한 주인장이 나와서 한마디 합니다. “나한테 안주 내어 오라고 하지 않는다면 내 이 앞에서 술 마시는 걸 허락하겠다.” 그렇게 그 골목은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입니다.
에디터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올해로 벌써 10년째 발걸음을 향하는 이 술집은 우리 같은 단골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지요. 항상 술자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혼자 술을 마시러 들어갔다가 4명 이상 자리를 함께하게 되는, 이상하게 그곳에서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마법 같은 곳이지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고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어 좀처럼 가지 못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그곳에서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죠. 나의 청춘이라는 시간과 맞바꾼 이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진짜 나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PLAYL1ST는 바로 ‘그때 그 노래’입니다. 술잔은 부딪히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기도 하며, 아침이 되는지도 모를 만큼 재미있었던 그 시간, 우리가 자주 듣던 노래들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주 멋진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때 그 사람들에게, 오늘은 안부 전화를 한번 돌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