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하는 소리, 틈입의 죽음

침입하는 소리, 틈입의 죽음

 - 마테를링크 <틈입자 The Intruder>


  우리는 희곡을 읽기 전, 맨 첫 단계로 제목을 통해 작품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인 ‘틈입자’라는 말은 내게 생소한 단어였다. 그래서 원제인 “The Intruder”로써 ‘침입자’, ‘불청객’’; 원치 않는 불허가의 존재ㅡ 라는 이미지를 처음 접한다. 제목은 작가가 극 안에 던져놓은 하나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심상을 가지고 그리 길지 않은 극을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죽음과 운명을 주소재로 다룬다. 대표적인 상징파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대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침묵이나 여타 매개물을 통해 대상을 연상시킨다 것. 별 사건이 없는 작품을 쓴 안톤 체홉처럼 연극이 거대한 사건이 되는 것을 배격했다는데, 이 작품 또한 그렇다. 그저 등장인물의 대사와 반복적인 몇 개의 소음들로만 극이 이루어져 있다. 이 극은 여타 연극과 다르게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연극에서 ‘사건’이라면 인물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인데 사건이 부재하기에 인물의 행동 또한 모호하게 느껴진다.


  극을 추진력 있게 끌어가는 사건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소리’와 ‘인물들’이다. 소리와 인물들의 뭉텅이가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서 여겨지고, 분위기가 극을 이끈다. 이 작품 내에선 많은 소리들이 등장한다. 어멈의 소리, 나이팅게일이 우는 소리, 정원사가 낫을 가는 소리, 정각마다 치는 시계 소리, 누군가 오는 소리, 램프 불이 흔들리는 소리, 마지막으로 아기방에서 들리는 두려움의 울음소리까지.


  극 중 다른 인물들은 할아버지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이는 할아버지의 상황과 불안한 심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할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귀가 예민하고, 아픈 자신의 딸 때문에 계속 불안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치 우리가 핸드폰 알람이 울리진 않았지만 우리는 핸드폰을 늘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알람이 울린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할아버지도 딸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고 반응한다.


  무엇이 그런 할아버지를 미친 존재로 보이게 했던 것일까. 그리고 제목에서처럼 침입자는 과연 누구인 것인가. 실제로 극을 이루는 많은 소리들 중 사람이 오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인물들은 고모를 기다리고 있기에 사소한 소리들까지 고모의 소리로 착각한다. 인물들이 원하는 것이 해소되지 않기에, 관객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된다. 어둠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끊임없이 침입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모는 오지 않고, 정말 무엇이 왔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정녕 침입자는 누구인가. 바로 죽음이 아닐까. 죽음은 사람처럼 출입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강박처럼 불시에 내면 안에서 자라나는 것ㅡ 밤새 불안을 자양분 삼아 우리에 침입하는 것. 죽음은 늘 그렇듯 우리 삶(생)을 침입하고 넘나 든다. 이 작픔에서 신경증적인 소리들은 인물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직조한다. 극에서 정각을 알리는 벽시계 소리처럼 우리는 죽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 작품에서 주기적으로 들리는 반복적인 소리들은 죽음을 침입하는 순간을 일깨워주는 듯 하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역설적이게도 우린 죽음을 자각해야만 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과 함께 실린 두 이미지 모두, 존재의 고통에 대해 고민한 작가들의 흔적이다. 첫번째 사진은 <절규 The Scream>으로 잘 알려진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의 <불안 Anxiety>이다. 두번째의 그림은 “인간의 삶 그 자체가 잔혹”을 얘기했던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의 <자회상 Self portrait>이다.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것들을 보여주고자 했던 마테를링크와도 궤를 같이 한다. 현대 예술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두 작가의 삶과 예술에 얽힌 것들이 궁금하면 몇 개의 작품들을 찾아보아도 좋겠다.


Editor  정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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