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사람들과 함께 과정을 겪는 것

암전된 무대에 아주 희미한 빛이 드리우면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최소한의 움직임만 보이는 조명 속에서, 일제히 행과 열을 맞춰 자리를 잡으면 첫 번째 장면이 시작된다. 첫 장면은 굿의 열두 거리 중 첫 번째 거리인 ‘부정거리’이다. 부정거리는 굿이나 제를 지내기 전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는 의식이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무용수들은 옷을 갈아입고 의식을 치른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시작된다.


   정영두 안무가의 <제7의 인간>은 2010년 초연되었다. 당시 올해의 무용 작품 베스트에 오르고 평단을 사로잡은 11년 전 공연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덜고 새로운 무용수들을 선발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소설 <제7의 인간>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970년대 유럽 이민 노동자들의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을 통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들을 떠나도록 강요하는 것은 무엇인지’, ‘떠나고 머무는 것이 그들의 몸과 정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제목은 헝가리 시인 아틸라 요제프의 시 제목이다. “네가 이 세상에 나서려거든/ 일곱 번 태어나는 것이 나으리라…” “……너는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제7의 인간은 주류에 속할 수 없어 소외되고, 의무만 남은 사람들이다. 공연에서 무용수들은 보다 더 나은 환경, 삶을 위한 행위를 파워풀하고도 섬세한 움직임으로 표현해낸다. 자유로운 것을 위한 태동은 관객에게 가닿는다.


   역동적인 퍼포머들의 몸짓을 보고있자니 그들의 몸의 느낌을 지각하게 된다. 그들이 맨발로 무대를 밟는 소리, 거친 움직임 뒤에 들리는 숨소리 등. 공동의 움직임을 향한 열망은 전염된다. 응집된 힘 안에서 극장은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 향수를 느끼는 공간, 떠도는 공간, 일하는 공간으로 치환되어 정서적인 접촉을 불러일으킨다.


   무용은 언어 이전의 것으로 가장 원초적인 것이다. 즉 언어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연예술 중 일회적인 성격이 가장 짙고, 언어의 틀로 표현될 수 없는 역동성이 있기에 각자의 주관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막스 헤르만이 공연을 ‘축제’와 ‘놀이’로, 퍼포머와 관객 사이에 일어나는 어떤 것으로 파악하면서 공연을 ‘인공물’이 아닌 순간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을 중점으로 무용 공연을 본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움직임의 문법은 언어의 체계로 이해하지 않으려하는 것. 기호가 아닌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텍스트가 아닌 퍼포머의 육체를 통해 표현되는 것들. 공연 그 자체에 매몰되어 현장에서 일어나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 시공간을 함께 점유하며 과정을 겪는 것. 즉 현상 그 자체를 지각하는 조건에 놓이는 것.

   여전히 디아스포라는 전세계에서 보편적 현상이다.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 이방인이 된다는 것, 비주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른 문화는 우리의 몸에 어떤 공간을 만들고 어떤 흔적을 남길까. “다가올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 희망과 기대” <제7의 인간>은 이주노동자의 문제에서부터 인간 보편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킨다. 이주노동자, 불법 체류자, 이민자뿐만 아닌 “떠날 것을 강요받은” 사람들의 문제로. <제7의 인간>은 효율로 점철되고 의미를 찾으려는 삶에 있어서 우리가 이방인인 것을 몸으로 깨닫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ditor  정다현



e-mail   luvmyself99@naver.com

instagram  @from_hyun_to_u


관련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