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놀이 속 한 줌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당신이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 동안 어디에선가는 삶의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안톤 체홉 <갈매기>

 

오늘 소개할 작품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이다. ‘예술’과 ‘사랑’이 주된 이미지로 존재하는 작품이다. 체홉 극의 인물들은 항상 사랑하고 그 사랑은 늘 어긋나고, 그 사랑에 상처받는다. 이러한 사랑은 대개 과거로부터 연장되어 오는 사랑이다. 과거에 흘러간 것들이 현재까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렇듯 작품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현재를 살아간다기보다 항상 기억을 회상하며, 즉 시간 속에서 산다.


안톤 체홉 대표작인 4대 장막 중 예술과 사랑, 기억과 망각, 희망과 좌절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갈매기>는 순환되는 일상의 부조리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체홉은 작품세계에서 자신의 사상과 관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모든 인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독자들로 하여금 인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의도한다. 그런 체홉의 관조적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 즉 살아있지 않고 지속되는 시간에서 인물의 자각을 보여주고, 이 자각의 순간은 우리에게 존재 가능에 대해 깨닫게 하여 시간 뿐 아니라 세계, 공간, 언어, 진리 등에 대한 물음들에 집중하게 해준다.

체홉은 작품에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무의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체홉은 이러한 인물의 무의식과 내면을 일상적인 삶의 단면을 통해 보여준다. 삶의 한 면을 그저 묘사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가치한 시간이 반복될 때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암시와 분위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사이(pause)와 침묵(silence)은 극에서 끊임없이 삶을 권태롭고 부조리하게 부각시킨다.

 

하지만 당신이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 동안 어디에선가는 삶의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체홉의 말처럼 우리는 일상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다. 허나 체홉의 인물들은 모두 과거 기억에 의해 고통받는다. 이는 마치 4대 장막의 인물들이 카드 놀이를 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습관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갈매기>의 인물들은 그것을 통해 현재를 자각하고 미래를 고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머물러 있는 인물들을 그린 체홉 작품은 현대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교감을 불러온다. 방향성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은 체홉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삶과 예술은 그리 아름답지 않음, 즉 낙관적이지 않음을, 둘다 기승전결로 끝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관조적이면서 한편으론 냉소적인 그런 체홉의 시선은 역설적이게도 따듯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이 궁금하다면 연극과 인간출판사의 <체호프 희곡전집2>에서 <갈매기>를 읽거나(가장 좋은 번역본이다), 2018년 개봉한 마이클 메이어 감독의 영화화된 <갈매기>를 추천한다.


Editor  정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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