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 임터뷰, 화가 김환고

  여름이 깊숙이 물든 8월달, 걷다 보면 일렬로 나란히 새워진 해바라기들이 보인다. 따가운 햇빛을 무릎 쓰고 바라보던 노란색 꽃밭은 ‘시간이 벌써 반이나 넘게 흘러버렸구나’ 하는 허탈함과 동시에, 아직 오지도 않은 앞날에 대해 굳이 끄집어 놓아 사색에 잠기게 한다. 이번 연도에 남은 시간, 무엇을 보내며 살아야 만족감에 젖는 한 해가 될 수가 있을까? 영 불편하고 꿉꿉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엉키고 꼬인 환경들에 치여 정신 없었던 2021년 그리고 목표를 잃어버렸던 2021년, 지금 나는 무엇을 하며 세월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은, 오늘 있을 김환고 선생님의 인터뷰를 끝 마치고 나서 마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오늘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어김없이 걸었다. 녹슬어 글자가 지워진 간판, 나시 차림에 어르신, 허름한 버스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옛 향수가 물씬 풍기는 거리에서 김환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지하에 있는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어떤 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이걸 어떤 냄새라고 콕 집어서 얘기는 못 하겠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나무 향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각양 각색의 나무와 톱밥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둘러 쌓여있는 전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환고 선생님은 충북 음성 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달리 자연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고 가깝게 지냈던 그는, 오랫동안 화가를 꿈꿔왔다. 하지만 그 꿈은 가난한 환경 속, 어쩔 수 없는 굶주림과 대면 했어야 했다. 환경과 꿈, 그는 타협점을 보기 위해서 도배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수십 년 간의 긴 시간이 지나고, 도배 업계 정상이라 말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오르자 2년전부터 본격적으로 평생 간직하고 있던 꿈을 현실로 만들기로 했다. 나무를 깎고 다듬고 색을 입히며 자기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가 김환고 선생님, 남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평생의 꿈을 위해 노력 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해 줄 말이 있는지 궁금했다.

  첫 번째 질문으로 선생님의 작품에서 나무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여쭤보았다.

A.  대부분의 작품이 저와 어머니의 추억, 혹은 어머니랑 오고 나눴던 대화내용을 형상화하여 작품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제가 나무랑 얽혀있는 추억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또한 순수 히 제가 나무를 좋아하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나무를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영감을 받기 위해 혹은 자연이 좋아서 산으로 들어가 많은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고 돌아온다는 선생님,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꾸며낸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우리의 과거는 좋은 시간만 남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날이 많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나를 돌이켜 봤을 때 ‘감회가 새롭다’라고 얘기 하는 것은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두 번째로는 다소 늦은 나이에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했다.

A.  사실 급작스럽게 준비한 건 아닙니다. 수년 간 도배사를 하면서 틈틈이 수첩에 그 날 느꼈던 감정을 담으려고 글과 그림을 꾸준히 그리며 썼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는 항상, 화가라는 꿈을 마음에서 지운 적이 없었기에 이루어 낸 거 같습니다.

기회는 놓칠 수 있지만 꿈은 기다려준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꿈을 잃어버리는 것도 내 스스로가 선택하는 일이라고도 들려왔다. 씁쓸함을 입에 머금은 채 세 번째 질문으로 이어나가, 나이 어린 예술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A.  누가 뭐래도 자기 작품에 대해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이리저리 핀잔을 놓아도 자기가 만족하면 그걸로 된 겁니다. 과하게 꾸며서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도 안 되고, 순수 히 자기 감정 그대로 작품에서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예술성, 시간이 갈수록 비슷해지는 작품들, 김환고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닌 작품을 보고 싶은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A.  저는 옹달샘 같은 삶을 지향하며 살아 갈려고 합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도의 그런 삶을요. 그리고 작고 소외된 사람에게 제 작품으로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작품 활동은 곧 다가올 가을, 제가 살던 고향과 비슷한 외지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전시회를 열려고 준비 중 입니다.

잔잔하게 요동치는 옹달샘의 물결이 적당한 유의 삶을 지향하는 선생님의 인생관은 욕심 많은 어린 나는 받아드리기가 어려웠다.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만든 작품들을 조금 더 자세히 보는 시간을 가졌다. 작품마다 공용된 주제 ‘회상’ 나는 지금 누군가의 기억을 흩어보며, 인터뷰하기 전에 했던 고민에 대한 답을 내려보기로 한다. 우리들의 과거가 친구와의 흔한 술자리에서 터놓을 정도로 좋은 안주거리가 되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뭐든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들의 과거, 굳이 완벽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문들을 자문자답 형태로 막 뱉어보고, 오늘 이 만남의 경험을 토대로 정의해 본다. 어설프지만 노력했던 우리들의 모습, 2% 부족한 지금 이 모습이, 결국에는 회포의 술자리를 갖게 하며, 마음 속에 평생 간직 될 기억의 습작처럼 남아있을 않을까 하고. 또한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한 망상 속의 달콤한 목표, 가슴 속에 멀어지는 날이 온다 한 들, 마음 속 작은 한 켠에 인내의 살을 여전히 붙들고자 하면, 우리가 피우려 했던 꽃에 숭고한 결실이 찾아 올 거라 생각한다.

개화의 시기가 찾아온 무렵, 이 글은 고심의 길을 걸어왔던 수고와 반갑게 인사 해주는 작은 글처럼 남아있길 소망하는 바이다.


Editor  임찬영

Photo  장세찬


e-mail   dlacksdud160@naver.com

instagram  @old_nibus


관련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