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알고 싶어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숱한 질문들을 통해 ‘나’라는 인물의 형상을 더 뚜렷히 만들어간다. 안나는 사회에서 필명을 쓰라고 하든,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으로 낙인 찍든 말든 자신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임을 알았다. 자신이 야한 상상을 하든 그것을 글로 쓰든간에 ‘나’의 모습임을 받아들인 것이다.
안나라는 캐릭터로 시작한 이야기는 보편적인 결론에 이른다. ‘레드북’으로 인해 재판장에 서야 했던 안나를 위해 브라운은 사람들의 후기를 판사에게 건낸다. 사람들은 모두 억압적인 상황에서 안나의 이야기를 보며 위안을 받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야한 소설을 쓰는 안나의 이야기에서 그저 나로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으로. 우리는 사회가 짜맞춰놓은 규범에 얽혀있진 않은가? 신사다워야했던 브라운이 브라운다운 것으로, 아내 혹은 여성다워야했던 안나는 안나다운 것으로. 나만이 내가 내세울 수 있는 덕목이다. 그렇기에 특별하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