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제법 내린 다음 날입니다. 이번에 내린 비의 양(量)이 계절이 바뀔 만큼 충분했던 것인지 요즘의 이 선선한 날씨가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라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좋습니다. 이제 정말 가을이 왔나 봅니다.
이제 새로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도 좋겠습니다. 먼저, 옷장 속에 묵혀있던 이 계절과 어울리는 옷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 일, 내가 가장 아끼는 셔츠들을 꺼내어 봅니다. 가을은 셔츠의 계절일까요. 이상하게 가을의 찍은 사진들을 보면 유난히 셔츠를 입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빛이 바랜 셔츠가 눈에 띕니다. 처음 이 녀석을 입었을 때만 해도, 꽤 인상적인 짙은 남색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헤지고 빛이 바래져 괜히 마음이 짠해지는 건 시간이 그만큼 흘러서겠죠. 이제는 놓아줘야 하나 괜한 고민을 해보지만 함께했던 가을이 짙기만 해서 어렵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나는 익숙한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매년 셔츠를 꼭 몇 개씩은 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손에 가장 먼저 잡히는 것들은 하나같이 그런 녀석들입니다. 입었을 때 이 녀석들이 주는 익숙한 편안함은 그 어느 것도 이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나 봅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이 계절과 계절 사이에 약속을 하나 해봅니다. 이 녀석들이 다 닳아 헤져서 구멍이 날 때까지 내 가을과 함께 하기를, 마치 새끼 손가락이라도 거는 것 마냥 괜히 옷깃을 쓰다듬어 보기도 합니다.
이번 PLAYL1ST는 내가 가장 아끼는 셔츠들, 바로 그 녀석들입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가을을 반갑게 맞이하는 노래들을 준비해봤습니다. 옷장에서 가을 옷을 꺼내듯이 PLAYL1ST에서 그런 가을 노래 녀석들을 하나둘씩 포개어 이 계절을 단단히 준비해보도록 하죠. 우리는 그렇게 한여름을 지났고 가을의 시작에서 그다음, 가을의 가장 깊숙한 때로 향하는 거예요.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