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는 이번 전시에서 관객에서 오디오 북을 제공한다. 이는 흔히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관객들 스스로가 퍼즐처럼 오디오를 이미지와 맞춰 시각적 서사라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도록 한 것이다. 화이트 큐브에 관객이 발을 들이는 순간, 눈 깜빡임이나 눈높이에 따른 시선, 그리고 각기 다른 시력까지, 작가는 이처럼 조건이 다른 관객들의 시작을 통제할 수 없다. 같은 이유에서 관객 역시 작가의 의도대로 이미지를 맞춰 나간다 해도 그 서사는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 운명적 조건으로 오랫동안 회화의 절대성과 순수성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주지하는 비와 같이 동시대에 이르러 이 벽은 허물어 졌다.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관객들에게 작품의 완성을 맡기고 복합적인 의미작용을 찾거나 새롭게 의미를 구성하는 아이디어만으로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는다. 회화와 끈질긴 생명력을 감지한 강철규는 다시금 원류로 돌아갔다. 그는 중세의 예술가들이 신화라는 원형적인 텍스트를 세밀화로 옮기는 작업을 했던 것처럼, 누구나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테크놀로지 시대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전사한다. 그것은 박복이 아닌 새로운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회화에 대한 모색으로부터 나온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