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로 돌아가는 길

자리로 돌아가는 길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는 길을 생각한다. 명절이란 늘 그런 것. 푹 쉬어야지 마음먹고 내려왔지만 서울에 두고 온 일들 덕에 미세하게 불안하다. 잠이라도 푹 자야지 싶지만 이왕 길게 쉬는 거 더 놀잔 마음으로 밤새 게임을 한다. 그럼에도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만 타면 뭔가 잠이 오지 않는다. 아쉬움 때문일까, 허전함 때문일까. 마음의 빈 곳을 채울만한 만화, 채널, 애니메이션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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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 브로큰 마리코 - 히라코 카와 』


  장기 연재를 한다고 결코 명작은 아니다. 짧은 분량 안에 마음의 일렁임을 가득 담은 작품들도 충분히 많다. 히라코 카와의 ‘마이 브로큰 마리코’는 거친 에너지 사이사이로 섬세한 표현들이 눈에 띄는 단행본 만화다. 추락사한 26세 여성 마리코. 마리코의 친구 시이노는 외근 중 식당에서 뉴스로 마리코의 죽음을 알게 된다. 마리코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가정학대를 당했다. 시이노는 그런 마리코의 아버지로부터 마리코의 유골을 뺏어오기 위해 식칼을 들고 나선다. 그리고 유골함을 빼앗는다. 달린다. 아름답거나 교훈을 주는 결말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때때로 누군가를 위해 나를 내던질 수 있다는, 그런 절박함은 확인할 수 있다.




『 Awesome Restorations - Youtube 


  낡고, 녹슬고, 움직이지 않는 것들을 복원하는 채널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라이터를 수리하는 것은 물론 도끼와 칼 등 다양한 도구들을 다룬다. 오로지 분해하고, 세척하고, 조립하는 과정만을 보여준다. 처음 보는 방식이고 모르는 작업들이지만 왠지 끝까지 보게 된다.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복원 과정은 때때로 경건한 의식처럼 보인다. 녹에 파묻혀 있던 본래의 빛깔이 드러난다. 망가진 나사는 새로 깎아 넣고, 부품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한다. 넋 놓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불순물이 벗겨져 나갈 때의 쾌감과 복원된 물건의 매끈함을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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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데스 + 로봇 - NETFLIX 


  넷플리스 오리지널로 스트리밍 서비스된 성인 애니메이션. 호러, SF, 미스터리, 사이버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음 가는 대로 아무 회차나 보기 좋다. 모든 회차가 전부 재밌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단편 애니메이션 특유의 짧은 호흡 덕에 늘어지는 기분은 없다. 시즌1 18화, 시즌2 8화, 총 26화.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는다.



Editor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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