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l1st #37. '숨 고르기; Taking a Breather'

  숨 가쁘게 흘러가는 가을입니다.

특별히 하는 것도 없지만 또 그렇다고 시간을 할애할 만큼의 대단한 걱정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가을이라는 것은 짧게만 느껴져 지나가는 시간이 조금 느리게 갔으면 하는 것이 요즘 나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있어서 일까요. 사람들의 옷차림도 계절을 닮아 바뀌었고, 이제는 몸이 움츠러들 만큼 선선한 새벽 공기 때문이지 따라잡기 벅차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요즘 저는 아주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온 탓인지, 지금의 여유가 낯설기도 하고 금방 지루해질 것이 뻔합니다만 그래도 퍽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엄마와 조금 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외식도 하고, 많이 걸었고, 무엇보다도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내가 이토록 수다스러운 것은 엄마를 닮은 것인지 우리 모자母子는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바빠, 남들이 보면 '저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사이가 제법 좋은 모자母子지간이랍니다.


  밤의 나무들을 보러도 자주 나갔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새벽시간, 밤의 나무들을 만나러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람에 스치는 잎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이곳저곳을 다니며, 맘에 드는 나무를 골라서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는데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 놀이입니다. 이 놀이의 마지막은 가장 마음에 드는 나무 옆에 앉아서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슴에 무언가 차올라서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만, 언제 봐도 벅차오르는 풍경입니다.

  잠깐의 달콤한 이 여유가 필요했던 겁니다.

사실은 요즘 매우 슬픈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치열하고 바쁘기만 했던 일상이 반복되어 삶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었는지, 잃어버리는 시간들이 하염없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철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속으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눈물을 흘릴 만큼 슬펐습니다. 그렇게 지금 이 여유를 가지며 든 생각의 결론은 '느리게 살고 싶다.'라는 마음. 남들보다는 조금 느리게 갈지라도 그냥 그렇게 주어진 삶을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치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바쁘게만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좋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멀리 걸어보고, 아니면 아무 말 대잔치를 열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는 겁니다. 나의 경우에는 밤의 나무들 사진을 찍는 것이니, 여러분의 것을 해봅시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그날 하루는 온전히 당신으로 존재했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숨 고르기'의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PLAYL1ST플레이리스트는 '숨 고르기'의 시간입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 그리고 치열함까지 벗어던지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 잃어버리는 시간들이 더 이상 아깝지 않도록 잠시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여러분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해보세요. 오랜만에 엄마와 수다를 떠는 일, 밤의 산책 아니면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가을과 잘 어울리는 커피를 마시는 것.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다면 전화기를 끄고 밤이 될 때까지 자보는 건 어때요? 후환이 꽤 두려울 테지만 그래도 당신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일지도 몰라요. 여러분들의 치열한 그 일상을 응원합니다.

Track list - A side


1. 전진희 - Breathing in October


2. Quentin Sirjacq - Kyoshu


3. Shanic - It All Changed So Fast


4. Nils Frahm - You


5. Beirut - Gallipoli


6. O3ohn - Somehow


7. 방백 - 심정


8. 강아솔 - 섬


9. 이예린 - Love Song


10. 전진희 - Breathing in October II

P.S.  PLAYL1ST플레이리스트 감상법


1. PLAYL1ST를 시작하셨다면 어떤 방해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시는 걸 강추합니다!

2. 매주 다른 음악과 아티스트들로 준비하려고 하지만, 에디터의 개인적인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겹치는 아티스트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3. 에디터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이야기에 음악을 곁들이는 사람입니다.

4. TMI이지만 전진희와 강아솔은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5. PLAYL1ST는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Editor  김남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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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gyunby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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