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꼭 알았으면 해!


'Whitney'

#2. 네가 꼭 알았으면 해 'Whitney'

'찬바람 불때'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아직 입지 못한 가을의 옷들이 참 많은데 말이죠. 가을의 색을 닮은 옷들을 좋아합니다. 그 색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지만, 뭉뚱그려서 '가을색'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좋아하고 지금의 시월과도 퍽 잘 어울리는 기분이라 더 좋습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가을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했는데 벌써 겨울이새치기를 하려는 것만 같아 언짢기도 하지만, 가을과 겨울이 힘겨루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이 변덕스러운 날씨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 마음대로 1주년'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깐 딱 이맘때였던 것 같습니다. PLAYL1ST플레이리스트라는 제목으로 처음 연재를 시작한 것은 작년 12월 말이었는데, 바로 그 첫 게시물을 썼을 때가 이 '계절과 계절'사이였습니다. 보낸 메일함을 급하게 찾아봤는데 맞네요, 작년 이맘때가.


  원래 저는 바다를 더 좋아했습니다. 내륙 지방에서 살아서인지 바다를 품은 곳에 대한 이유 없는 동경과 낭만적인 환상들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산 그리고 숲은 내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았지만, 바다는 차를 타고 멀리 찾아가야만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한 바다를 그리워하며 좋아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과는 너무 다르죠? 밤의 나무들을 만나러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고, 어떤 나무인지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철수라든지 영화 같은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밤에 나무들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 좋아해요.'라며 한껏 수줍게 말하는 일명 '나무 아저씨'로 불리고 있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나무 아저씨는 녹색들을 좋아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좋아하는 색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무같이 생명을 드러내는 녹색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무 아저씨의 충격적인 반전인 셈이죠? 녹색들을 집에 들이지도, 그것들을 쫓아 산속을 걸어보지도 않았고, 또 '바다가 그립지 않을 만큼 녹색이 가득한' 풍경을 로망으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에 대한 나의 정리는 '음, 특별한 이유는 없고, 어쩌다 보니 녹색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입니다만, 이렇게 녹색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래도 몇 가지 있을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수많은 이유들 중 한 가지를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또 마침 연재 1주년은 아니지만, PLAYL1ST플레이리스트 집필 1주년이기에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첫 번째 아티스트, 그리고 제가 녹색과 그것들의 숲을 좋아하게 된 이유. 소개합니다, 밴드 Whitney 입니다.

  Whitney는 미국 시카고 출신의 밴드입니다. 밴드의 주축 멤버인 기타리스트 Max Kakacek과 드러머이자 보컬 Julien Ehrlich 이 둘은 Smith Westerns의 멤버였는데, 밴드가 해체되면서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노숙자와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Abner Jay, Jim Ford, Lewis 같은 6, 70년대 아티스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이 둘은 서로 의기투합해서 Whitney를 결성했다고 합니다. 'Whitney'라는 이름은 앞서 말한 아티스트들처럼 최근에 발굴되거나 재평가되기 전 까지는 수수께기에 쌓인 가상의 옛 작곡가 Whitney 라고 자신들을 명명하면서 그런 분위기를 풍기려 했습니다.


  Whitney의 음악은 컨트리, 팝, 포크 등 옛 미국 음악의 양식들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진짜 말 그대로 '오래된 노래'를 듣고 있는 편안함과 그리움, 그리고 부드러움까지 느껴지는 기분이 듭니다. 왕년의 컨트리 팝, 포크 송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기특한 젊은이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미국의 탑골공원이 있다면 그곳의 어르신들이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작년에 나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보지도 못한 숲을 머릿 속을 그리면서 하루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 계절과 계절 사이 제법 쌀쌀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이름 모를 숲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내 키보다 높은 나무가 우거져 있고, 초록은 그렇게 단풍이 되어 계절을 갈아입으며,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부서져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숲입니다. 숲에 가본 적은 없습니다. 나무가 많은 공원을 걸어본 적은 있지만, 말 그대로 숲은 아니었기에. 산 과는 조금 다른 느낌일까요? 사실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가본 적도, 눈으로 본 적도 없기게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장소입니다. 한 번도 그곳에 발을 들인 적없지만, 그래도 어쩐지 길을 잃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부서지는 햇빛과 바람소리를 따라 그렇게 숲속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 숲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죠. '숲에 가본 적 있나요?'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저는 Whitney의 노래를 들으며 몇 번이고 숲에 가보았습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발걸음마다 부서지는 낙엽 소리가 듣기가 좋아 길을 잃어보기로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길을 잃었지만 두렵지 않더군요. 가는 곳마다 나는 이 숲에 이방인일 테니깐요. 낯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면 풀벌레 소리와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에 맞추어 책장을 넘겼고요. 그러다 바라본 하늘에는 별의 이름을 모르는 내가 미워질 정도로 아름다움이 놓여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Whitney에 노래를 듣고 숲에 찾아가 봤으면 합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절대 담을 수 없는 이 세상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 차 있는 숲으로 떠나보기를, 그리고 꼭 Whitney의 노래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들의 노래는 분명 여러분들이 서있는 그 숲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줄 겁니다. 숲에 가는 것은 서사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출발을 해서 도착까지의 과정, 그리고 숲에 도착해서 밤이 되어 아침이 되는 것까지. 서사事敍는 시간과 공간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우리에게는 숲이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이제 음악이라는 시간을 준비하면 되겠습니다.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들이 서있는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당신의 서사事敍로 남기를 바라겠습니다.


  자, 이제 음악을 들어봐야겠죠? 원래는 10곡 정도 추려서 여러분들께 소개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워낙 좋아하고 또 앨범 메이킹도 너무나도 훌륭하게 해내는 밴드이기에, 이번에는 여러분들이 앨범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시기를 강력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안되시는 분들을 위해서 앨범에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리스트를 준비해두겠습니다.

데뷔 앨범[Light Upon the Lake]


  포크와 컨트리를 기반으로 한 데뷔 앨범[Light Upon the Lake]은 '호수의 빛'이라는 이름처럼 온화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사운드의 절반은 느긋한 기타 연주로, 현악기와 금관악기 소리로 채워져 있는데 섬세한 악기 솜씨에 팔세토의 보컬이 더해진 앨범은 몽글몽글하고 빈티지한 1960~1970년대 포크 사운드를 간지하고 있다. (에디터는 호수를 찾아갈 때마다 꺼내어서 듣는 앨범입니다.)

2집 [Forever Turned Around]


  앨범 [Forever Turned Around]는 전작보다는 조금 더 고전적인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데뷔 앨범[Light Upon the Lake]가 로파이-인디와 소울의 성향이 강한 포크 뮤직이었다면 이 앨범에서는 조금 더 포크와 AOR(Adult-oriented Rock)에 가까운 사운드를 지녔다고 합니다. 사실 데뷔 앨범이 주목을 받으면 소포모어(차기작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 Whitney는 그것을 초월하는 오리지널 사운드와 모던한 감각이 어우러진 새로운 클래식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3집 [Candid]


  David Byrne, John Denver, Kelela, Labi Siffre, Brian Eno, Damien Jurado 등의 노래가 Whitney의 스타일로 재탄생 되었고, 기존에 추구하는 편안함을 벗어나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리메이크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커버 앨범에 대해 Whitney의 줄리엔은 '듀엣에서 밴드로 탈바꿈 중인 Whitney가 진화하기 위한 연습 과정이며, 그런 훌륭한 음악을 통해 우리 자신의 스타일을 구체화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전했다는데, 정말 이 밴드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될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아티스트의 마인드라고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Track list 


1. [Light Upon the Lake]


2. [Forever Turned Around]


3. [Candid]



P.S

*'네가 꼭 알았으면해(I Really Want You to Understand)' 감상법

1. 이 시리즈 '네가 꼭 알았으면해(I Really Want You to Understand)'는 정해진 주기가 없습니다.

2. 여러분들이 알고 있을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즐려주세요.

3. 소개하는 아티스트의 기준은 에디터 마음대로입니다.

4. 이 시리즈는 연말 분위기에 맞추어서 조금 색다르게 준비할까 합니다.

5. 제목은 미정이지만 힌트를 드리자면...페스티벌입니다.


Editor  김남균



e-mail   sirius0188@naver.com

instagram  @gyunbygyun


관련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