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l1st #38. '영혼에 좋은 일; Good For The Soul'

가끔은 미련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 말이죠.


고된 하루 끝에 집으로 돌아와서 힘든 몸을 침대에 누일 법도 할 텐데,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청소기를 잡는 것입니다. 물론 매일이 그렇기는 쉽지는 않습니다. 내 방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침대라는 녀석이 꽤 유연한 자태를 뽐내며 어서 나에게 안기라며 유혹의 손길을 내밀지만, 이상하게 나는 바닥에 보이는 머리카락 한 올이 유독 신경이 쓰이기만 합니다.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바로 그 침대 녀석의 유혹에 넘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아주 포근하고 또 포근하더군요. 이런 편안함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했던가요? 침대는 인류의 역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정신이 바짝 듭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침대 옆에 협탁에 살포시 쌓인 아주 작고 작은 먼지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 아무래도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침대는 이런 내가 아쉬운지 더 안아달라며 보채는 눈치이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내 신경은 온통 그 '작고 작은 먼지' 이니깐요.

자, 이제 청소시간입니다.


가장 먼저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할까요? 우선 포근한 잠자리를 위해 이부자리를 정돈하기로 합니다. 베개와 이불을 걷어내고 매트리스 매트를 가지런히 펴줍니다. 그다음에 이번 청소의 주연 '청소기'를 사용할 텐데요, 이부자리 전용 솔로 갈아끼고 지난밤에 쌓인 매트의 먼지들을 제거해 줍니다. 베개와 이불도 잊지 말아야 해요. 내 몸에 닿는 것이니깐요. 이제 바닥으로 가볼까요? 바닥 솔(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넓은 솔)을 장착하고 방바닥 순회공연을 펼칩니다. 많은 먼지 관객들이 찾아주셨네요.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으로 가볍게 해주는 느낌으로 바닥의 결을 따라서 청소기를 사용해 줍니다. 자, 이제 틈새 솔이 등장합니다. 이제는 디테일의 싸움이에요. 바닥 틈새, 이음새, 몰딩 등 눈에 보이는 구석구석 어느 한곳도 빼먹지 말아야 해요. 지금 내가 너무 과한 건 아닌가 싶나요? 잘하고 있는 거예요. 다음은 청소기 높이 조절입니다. 높이를 짧게 조절하고 핸디한 느낌을 물씬 풍기며 가구와 각종 집기 사이사이 숨어있는 먼지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요? 혹시 모르지 않나요? 그저 한낱 먼지들에 불과하지만 내 호흡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제 1단계가 끝났습니다.


3단계까지 있는데 내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군요. 청소 이야기에는 눈이 멀어 음악 이야기를 안 하고 있었군요. 2단계와 3단계는 허지웅 작가의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중 '이것이 청소 왕의 청소법이다.'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PLAYL1ST는 '청소 이야기'입니다. 내가 이렇게 미련스러울 정도로 청소라는 행위에 집착하는 것은 아마 나에게 의미가 많은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단순히 청소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다잡는 일이기도,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기도 혹은 더 나는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청소를 '영혼에 좋은 일'이라고 명명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바로 접니다.) 또,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가장 단순한 방법입니다. 내가 사는 집 혹은 방을 정리하는 일은 나를 아끼고 소중히 하는 일, 어쩌면 고생한 나를 내가 쓰다듬어 주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 준비한 노래들은 제가 실제로 청소할 때 자주 트는 노래들인데,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와 아마 힘이 드는지도 모르게 즐거운 청소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청소, 이름만 들어도 힘들고 귀찮겠지만 그래도 분명히 영혼에 좋은 일을 미루지 말고 해봅시다. 그럼 이만!

TRACK LIST


1. Xavier Cugat - Maria Elena


2. 조덕배 -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3. 윈터플레이 - Happy Bubble


4. Spencer Sutherland - Sweater


5. 좋아서하는밴드 - 1초 만에 만나는 방법


6. Electric Guest - More


7. Wildson - I am Better Off


8. Binki - Heybb!


9. Jack Stauber - Buttercup


10. Brasstrack & Samm Henshaw - Change For Me


Editor  김남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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