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며 다니지만 특히 요즘 같은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제까지는 영원히 푸르기만 할 것 같던 그 기세등등한 나무들이 오늘은 빨간 옷을 입고 있고요, 저 건너편의 친구는 노란 옷을 입고 있네요. 예쁘게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은 벌써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고, 또 지나가는 가을을 보낼 수 있는 준비를 이미 다 마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만 그 준비를 마치면 되겠군요. 올해는 유독 가을이 짧게만 느껴져 이대로 보내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웃으면서 보내주기로 합니다.
"안녕, 나의 가을아. 다시 여기서 만나자."
이제 겨울을 준비해 봅시다. 우선, 첫눈이 오는 날에는 영화<이터널 선샤인>을 보기로 해요.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눈 덮인 백사장을 그들처럼 걸어봅시다. 또, 언제 온 세상이 얼어붙을지 모르니 옷장 깊숙이 파뭍혀있는 내 오랜 겨울 친구들인 아끼는 목도리와 귀여운 장갑을 미리 꺼내어 놓아요.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친구들. 아, 작년에 큰마음을 먹고 산 겨울 파카도 꺼내야겠습니다. 이번 겨울의 주인공은 바로 이 녀석입니다. 비싸게 샀으니 제값을 해야겠죠? 그리고 나는 이병률 작가의 책도 준비해 놓을게요. 어쩐지 삿포로에 가고만 싶어지는 이야기를 꼭 당신께 읽어줄게요. 올해도 눈이 많이 올까요? 작년에는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올해도 그렇게 하고 싶네요. 이왕이면 이 도시가 멈출 만큼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 가지 않고 꼭 붙어있어도 좋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