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l1st #39. '코 끝에 겨울 ; Winter is Coming'

  지난밤에는 짧은 비가 내렸습니다. 오랜만에 내린 비였을까요? 아니면 한동안 비 오는 날을 잊고 있었던 걸까요? 모처럼 내린 소낙비가 반가워 온몸으로 그 비를 맞으며 담배를 한대 태웠습니다. 이번 10월 날씨는 내 기분과 같았을까요? 낮에는 덥기를 밤에는 춥기를 반복하고, 또 어떤 날에는 손끝이 찡할 만큼 추웠던 날도 있었습니다. 나는 좋아하는 계절도 딱히 없고, 더위라든지 추위를 잘 타지 않는 탓에 계절의 변화에 예민하지도 않은 사람이어서 계절이라는 것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이렇게 말하기는 조금 이르지만, 나이를 먹다 보니 지나가는 계절마다 아쉬움이 남아 가장 지금의 계절다움을 느끼려 이곳저곳을 누비는 내 모습이 우스울 때도 있답니다.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며 다니지만 특히 요즘 같은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제까지는 영원히 푸르기만 할 것 같던 그 기세등등한 나무들이 오늘은 빨간 옷을 입고 있고요, 저 건너편의 친구는 노란 옷을 입고 있네요. 예쁘게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은 벌써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고, 또 지나가는 가을을 보낼 수 있는 준비를 이미 다 마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만 그 준비를 마치면 되겠군요. 올해는 유독 가을이 짧게만 느껴져 이대로 보내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웃으면서 보내주기로 합니다.


"안녕, 나의 가을아. 다시 여기서 만나자."


  이제 겨울을 준비해 봅시다. 우선, 첫눈이 오는 날에는 영화<이터널 선샤인>을 보기로 해요.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눈 덮인 백사장을 그들처럼 걸어봅시다. 또, 언제 온 세상이 얼어붙을지 모르니 옷장 깊숙이 파뭍혀있는 내 오랜 겨울 친구들인 아끼는 목도리와 귀여운 장갑을 미리 꺼내어 놓아요.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친구들. 아, 작년에 큰마음을 먹고 산 겨울 파카도 꺼내야겠습니다. 이번 겨울의 주인공은 바로 이 녀석입니다. 비싸게 샀으니 제값을 해야겠죠? 그리고 나는 이병률 작가의 책도 준비해 놓을게요. 어쩐지 삿포로에 가고만 싶어지는 이야기를 꼭 당신께 읽어줄게요. 올해도 눈이 많이 올까요? 작년에는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올해도 그렇게 하고 싶네요. 이왕이면 이 도시가 멈출 만큼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 가지 않고 꼭 붙어있어도 좋을 거에요.

  이번 PLAYL1ST플레이리스트 나의 '겨울 준비'입니다. 늘 그렇게 반복되는 계절의 순서이지만 마지막이기에 언제나 가장 극적으로 설레는 다음 계절을 잘 준비해서 잘 대접해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무슨 아직 오지도 않은 겨울을 벌써부터 유난을 떨며 기다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제 정말 코 끝에 와있습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이십사절기의 하나인 입동立冬이라고 하더군요. 절기상으로는 이제 가을이 한주 남짓 남은 거네요. 여러분의 가을은 어땠나요? 나는 조금 아팠고 많이 즐거웠습니다. 그래도 남은 일주일의 가을을 잘 보내고, 겨울을 잘 맞이하겠습니다. 그리고 겨울엔 덜 아프고, 더 많이 즐겁게 보내겠습니다.


"안녕, 나의 겨울아. 어서 와."


입동立冬(명사) : 이십사절기의 하나. 상강霜降과 소설小雪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한다.

Track list


1. Remedios - A Winter Story


2. 정재형 - Andante


3. 넬 - 지구가 태양을 네 번


4. Francis Lai - Snow Frolic


5. 프롬 - 반딧불이


6. Daniel - 꽃


7. Sunset Rollercoaster - Vanilla


8. Pastis - The Lake


9. Beck -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


10. Ryuichi Sakamoto - Merry Chrismas Mr.Lawrence


Editor  김남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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