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애인을 불러오는 방식


*이번 주부터 새로운 연재가 시작됩니다. 매주 미술, 영화, 연극을 주제로 문하영, 최현수, 정다현 세 필진이 서간을 주고받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영화를 읽으시는 현수 씨,


  겨울의 길목에 들어선 요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봄이라도 된 듯 이제서야 비로소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 비-대면'을 지나 돌아 다시 '비-비대면', '대면'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서로 얼굴을 마주함.'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낀 채.

  얼마 전 우리 셋도 화면 밖을 나와 찬 바람에 어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우리가 주고받게 될 서신에 관해 이야기했지요. 서로를 마주한다는 것은 그간 무슨 의미였을까요? 문득 아래의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1991. Installed in Felix Gonzalez-Torres. Luhring Augustine Hetzler Gallery, Los Angeles. 19 Oct. - 16 Nov. 1991. Photographer : James Franklin. Image courtesy of Luhring Augustine Hetzler Gallery

"Untitled"(Portrait of Ross in L.A.), 1991, Candies, endless supply


무제(無題)라면서 나지막이 'L.A의 로스(Ross)의 초상'이라 말하는 사탕들. 그리고 그것도 '계속해서 채워질(endless supply)' 사탕들이네요. 사실 이 작업에서 관람자는 바닥에 놓인 사탕들을 직접 만지고 가져다 먹을 수 있습니다. 아니, 사실 그러도록 요청됩니다. '노 터치(No Touch!)'의 긴장이 도사리는 미술관에서 이 작품은 '터치'되고 (무려!) 소비된답니다.


귀여운 이벤트 같은 작업을 구상한 이는 쿠바 태생 미국 작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1957-1996)입니다. 그는 짧은 생에 동안 1980-90년대 미국에서 미술, 사회, 교육활동을 활발히 하며 다양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는 특히 일상적인 사물들을 사용하여 개념적인 작업을 했고, 자신의 사적인 삶에서의 사랑과 실연, 섹슈얼리티, 삶과 죽음 등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이 '무제'의 사탕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1991. Installed in Objects of Wonder : from Pedestal to Interaction. ARos Aarhus Kunstmuseum, Aarhus, Denmark. 12 Oct. 2019 - 1 Mar. 2020. Cur. Pernile Taagard Dinesen. Photographer : Lise Balsby. Image courtesy of ARoS Aarhus Kunstmuseum.

설치된 사탕은 총 175파운드, 즉 79kg가량으로 유지되도록 미술관 측에 주문되어있습니다. 사연은 이 숫자에 깃들어 있는데요, 이는 바로 작가의 전 연인 로스 레이콕(Ross Laycock)이 AIDS로 사망하기 전 건강할 당시 몸무게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작업을 이루는 사탕 전체, 혹은 사탕 하나하나는 로스의 체중, 혹은 육체 자체를 은유하고 있습니다. 관람자에 의해 줄어가는 사탕 더미의 부피는 결국 부제가 암시하듯 곧 병으로 소멸해가는 그의 존재의 초상이었던 것입니다.

얼굴 없이 마주한다는 것



  비애감 깊은 애도가 사탕의 달콤하고 가벼운 즐거움과 교차하는 이 아이러니한 지점에서 'endless supply', 즉 빈자리는 계속해서 채워지고 그의 존재는 끊임없이 되돌아옵니다. 그리하여 곤살레스-토레스가 기획한 것은 맛있게 먹기, 기억하기, 기억하게 하기, 존재를 나누기, 존재를 기억하게 하기..


  그리고 마주하기. 

  작품은 엄숙히 '보이기'보다는 그의 안으로 관람자를 기꺼이 초대합니다. 관람자는 떠나가고 없는 작가의 옛 연인을 마주합니다. 우리는 작품을 마주하고, 작가를 마주하고, 작가의 연인을 마주합니다. 어쩌면 그게 곤살레스-토레스가 얼굴과 얼굴이 만날 수 없는 운명, 즉 미술관과 죽음이라는 운명 안에서의 마주하기 방식을 상상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를 마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얼굴(面) 없는 대함(對)을 상상했습니다.


다음 주 영화를 통해서는 무슨 이야기해주실 건가요? 현수 씨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미술의 하영 드림.



Editor  문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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