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팬데믹의 공간 ep.01
암석, 벽돌, 콘크리트 : 원서동 공방길.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다. 초록이었던 것들은 땅으로 사라질 것이다. 떨어진 것들에 대해선 누가 기억할까. 모두가 흔히 알고 있는 인사동이나 북촌이 있다. 그 공간은 어떤 사람과 벽들로 들어 차 구성되고 있는가.

 사람이 있고 그곳에 공간이 생겨난다. 원서동은 관광지보다는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인식될 것이다.


이번 아카이빙은 '시간과의 공존'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무색하다. 허물어진 시간을 책임 지는 연습은 긴 세월에 걸쳐져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방식으로 공존의 스탠스를 상상한다. 때에 따라선 무너뜨리고 어느 날에 들어서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거미줄처럼 셀 수 없는 종류의 수효로 방법에 대해 논의한다. 그 결과, 도시의 공간은 생존, 재개발 그리고 도태의 영역에서 숨을 헐떡인다. 

팬데믹 이후로 사람이 지나지 않는 원서동. 공간에 거주하고 있거나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만 간간히 보인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있는 한옥과 돌담을 생경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면서 계속 봐왔던 것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원서동에는 건축이 진행 되고 있는 터가 많았다. 원서동 교육연구시설 신축 공사가 지어지고 있고 많은 한옥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동력이 존재하고 그것을 밀어줄 수 있는 걸출한 에너지들이 있다는 뜻이다. 공간이 사라지지 않기 위한 방법 중 가장 떠올리기 쉬운 것은 많은 사람이 그곳을 찾는 것이다. 원서동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원서동의 한옥들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듯 새로운 기왓장들이 올라가고 있다.


개량되어져 신식으로 보여지는 건축물들이 어딘가 영 어색할 때가 있다. 세월을 감추면서 고즈넉함을 지니는 숨쉬기는 어렵다. 원서동의 건물은 가옥이나 집터를 제외하고는 벽돌과 콘크리트가 섞여있다.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다는 향취가 가득할 때 우리가 생각할 공존은 무엇이 될까. 뉘앙스는 항상 알아차리기 어렵다.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느낌들이 가득한 공간은 그 가운데에서 숨을 쉬면서도 애매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특색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은 아득하지만 내 품 속으로 굴러들어오는 사과는 멀리서 보아도 사과이다. 그 중간 지점을 잡는다는 것. 색바랜 캔버스에 새로 산 물감을 바르는 일. 그 시도는 바라보는데 즐겁다. 

지나쳐온 세월을 알 수 없는 벽에 콘크리트로 지어질 지 알 수 없는 공사장의 그림자가 져있다.


돌과 벽돌 그리고 콘크리트는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각자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들숨과 날숨을 몇 년이고 뱉어 내더라도 그들은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세월의 역습은 무섭다. 무해한 관계를 뒤집어 엎는 것은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삶과 더 편한 삶들의 무리에서 하나의 생태계는 무너질 법한 진동으로 흠칫 놀란다. 그만큼이나 공존은 어렵다. 사람이 지날 수 없는 길을 만드는 건 그 노면을 여러 번 지나치는 발과 손이다. 더이상 발이 길을 닦는 것은 어렵다. 공간의 새로운 시작은 손과 손이 만나는 일이 다분하게 생겨나는 우연들로 인해 발생할 것이다. 원서동에는 그 연유로 길이 만들어지고 공방들이 그 공간에 들어 차있다.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상주하고 있고 그 길을 둘러싸는 큰 힘은 주민들이다. 

원서동 "NOO" 오현주 대표의 손


고유한 향은 특정 지어보려 고민해보아도 가끔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좋은 향일수록 우리는 머리에 남겨보려고 하지만 향은 후각이기에 눈에 보이질 않는다. 이미지는 그 향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촉매의 방법일 것이다. "NOO"의 오현주 대표는 우리나라, 한국의 도자기 형태의 향초 제품을 만든다. 무언가를 만드는 힘은 주무르는 힘과 펼치는 힘 가운데에서 팽창한다. 깎아내고 덜어내는 사람의 에너지는 어느 시점에서 돌고 돌 수 있을까. 손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도자기의 형태이지만 나아가 좋은 향기로서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 또한 하나의 에너지이지 않을까. "복잡스럽기보다는 조용한 곳을 찾아다녔다. 창덕궁이란 공간이 옆에 있는 것이 이곳에서 작업을 하는 이유." "인사동이 옆에 있지만 원서동은 유명하지가 않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원래 많진 않았지만 코로나 이후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줄었다. 판매 문제에 있어서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캐모마일과 아카시아 향의 향초를 샀다. 은은한 향은 가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꽃잎은 각자의 좋은 향을 담고 있다. 당신이 어떤 향 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을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돌로 지어진 담길 안에서 살아내고 있다.


돌담길이 끝날 무렵 씨유의 노상테이블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청소년 둘은 흡연금지라고 쓰여있는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 숙제를 하는 듯했다. 과자와 음료수를 사이에 두고 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듬성듬성 지나가고 있었고 돌담 너머로 웃자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구름이 태양을 가린 탓에 아스팔트 위엔 종종 그늘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사람과 거리를 돌아다니는 행인을 그린다. 둘 중 무엇이 더 커지더라도 공간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공간을 찾는다. 공간은 그 자리에서 존재하기 위해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헤르츠의 진동을 무수히 내뿜는다. 많은 손과 벽들이 공간을 둘러싸고 주무르기를 반복할 것이다.


Editor  오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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