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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의 오래된 힙스터 LP 디깅코스 추천>

음악을 듣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 곡을 고르고, 플레이리스트에 등록하고, 그것들을 들으며 빠르게 걷는다. 눈앞의 풍경과 들어맞는 곡이 재생되면 괜히 특별한 기분이다. 평소엔 그저 그렇게 스쳤던 곡에 이야기가 담긴다.

 


LP는 한동안 낯선 음반매체였다. 나의 첫 LP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Loveless’였다. 시간을 들여 택배를 받았을 때, 그리고 LP를 방 한 편에 세워두었을 때 두 번의 기쁨이 있었다. 최근부터는 레코드 가게를 돌아다니며 좋아하는 밴드의 LP를 찾고 있다. 이전 시대의 물건이지만 어째서인지 새롭다. 아마도 LP라는 물건에 담긴 시간의 가치와 다시 내 손에 들어오면서 새겨질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레코드 가게를 찾아 종로구와 중구 일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새로운 장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에 쏙 드는 앨범을 찾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누군가와 새로운 장소에 머물렀단 사실이 가슴을 뛰게 한다.

서울시 종로구 역시 그렇다. 이전의 서울과 지금의 서울이 만나 숨 쉬는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눈에 들어오는 간판마다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오래된 악기점이 보이고, 누군가 방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을 법한 LP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여름의 낮은 길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음을 뗐다.

 


종종 일렉기타를 든다.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은 없지만 그래도 괜히 기분이 좋다. 흰색 스트라토캐스터를 보자마자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왼손으로 치던 스트라토캐스터가가 떠올랐다. 록스타는 못 되더라도 기타를 칠 수 있는 사람.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지판에 손가락을 올린다. 

누군가가 헤비메탈을 꿈꿀 때 누군가는 어쿠스틱 기타의 울림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경은상사’는 한국 밴드 사운드에 있어 헤비메탈이 주류였을 당시 어쿠스틱 기타 브랜드를 한국에 소개한 가게로 유명하다. 언제나 어쿠스틱 기타를 구매하거나 튜닝 받기 위해 많은 손님들이 드나든다. 누구도 구매를 강요받지 않는 공간이었다. 다양한 악기를 구경하고 시연해볼 수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어쿠스틱 기타들이 단정한 자세로 벽에 걸려있었다. 처음 기타를 고르던 순간 그 설렘이 되살아났다.



누군가는 음악을 하기위해 종로를 찾는다. 가객(歌客) 김광석 역시 경은상사를 자주 들렀다고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곡에서 들리는 기타의 울림이 경은상사에서 시작된 것이라 상상하니 낙원상가의 풍경이 새로웠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서울레코드’가 보인다. 입구부터 레트로 스타일의 타이포가 반겨준다. 오래된 선풍기와 TV, 카세트까지 시대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특히 매장 한 가운데 위치한 붉은색 전화박스는 닥터후의 타티스를 떠오르게 한다. 전화박스에 들어가 헤드셋을 걸치면 과거로 돌아갈 것만 같다. 1976년부터 자리를 지켰다는 말처럼 오래도록 사랑 받아온 음악들이 들렸다. 트로트를 고르는 어르신부터 재즈 음반을 들여다보는 젊은이까지 LP와 CD가 빼곡한 공간 속에 다양한 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음반을 뒤적여도 마음이 편한 공간이다. 빠르게 둘러보는 사람들보다 각자의 음악을 고르기 위해 천천히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재즈와 록, K-POP, J-POP,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서울레코드를 채웠다. 꽂혀있는 음반들 속에서 ‘나의 음악’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 믿고 천천히 둘러봤다. 맑고 넓은 바다 위에 두 명의 남자가 서 있는 LP를 발견했다. 가끔 찾아듣던 이오공감(2·5·共·感)의 앨범이었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들으며 걸었던 지난겨울이 떠올랐다. 


과거와 현재가 일치하는 순간을 감각하며 한참 동안 LP들을 뒤적였다. 창밖이 조금 어둑해졌다. 도로 건너편으로 종묘가 보였다. 긴 시간 한 자리를 지킨 레코드 가게에서 더 긴 세월을 견뎌온 문화유산을 바라본단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보신각 방향으로 걷다보면 ‘노우즈 프로젝트’를 발견할 수 있다. 보행자들로 가득한 종로 거리에 비해 보신각 뒤편 골목은 한적하다. 마치 오래된 음악다방을 옮겨놓은 것처럼 에스프레소바 너머 벽면에 LP가 들어서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제야 한 여름을 통과해 에어컨 아래 앉았다고, 꽤 길었던 하루가 끝나는 기분이다.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노우즈를 나왔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퇴근길에 섞여 종로를 걷다 을지로에 도착했다. 종로와 붙어있지만 어딘가 조금 다른 인상의 가게들이 보였다. 골목길 사이로 유난히 붉은 조명이 보였다. ‘OPEN'이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시 붉은 조명으로 가득했다. 


낮의 ‘클리크 레코즈’는 알고 있었지만 밤의 ‘디엣지’는 처음이었다.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에 음악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음악이 들리는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행운이다. 종로를 한껏 걸었으니까 이번엔 마음껏 행운을 누리자는 마음으로 하이볼을 주문했다. 



서울시 종로구 곳곳을 걸었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에 들러 음악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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