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ke AF-1, 40th Anniversary


Sneakers Collector Interview

'성락'

Q.  자기소개


A.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스니커칼럼니스트, 그리고 지금은 스니커·의류 샵인 로종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성락이라고 합니다.


Q.  나이키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


A.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늘 토요일 오후가 되면 AFKN 방송을 틀고 WWF(현 WWE)를 보려고 기다리고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방송 중이던 NBA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마이클 조던’과 ‘페니 하더웨이’가 NBA현역으로 뛰던 당시였어요.


그들은 곧 제 영웅이 되었고, 그들의 발에는 언제나 나이키가 함께하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나이키를 사랑하게 됐고 매일 밤 꿈꾸게 됐습니다. ‘페니 하더웨이’가 신었던 ‘에어 페니 1’이나 팔에 찼던 ‘페니 아대’, 그리고 ‘에어 조던 10’을 신는 상상을 하기도하고 너무나 가지고 싶어 했었죠. 그래서 매일 같이 학교가 끝나면 나이키 매장으로 달려 갔어요. 하지만 당시 저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구입하지는 못하고 밖에서 구경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Q.  스니커즈 컬렉션을 하게된 계기와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어릴 때부터 집이 정말 가난했어요. 제 또래 중에는 조금 드물게도 밥을 못 먹고 다닌 아이였죠. 옷도 한 벌이었고, 브랜드 신발을 당연히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친구가 신다가 구멍이 나서 버린 필라 단화를 주워 신었습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진 브랜드 신발이었어요. 행복했어요. 하지만 곧 친구들에게 발각되어 놀림감이 되었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나중에 커서 내가 돈을 벌게 된다면 꼭 내가 신고 싶은 신발들을 마음껏 사서 신겠다고, 그리고 나처럼 신발을 가지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빌려주기도 하겠다고. 그때의 결심으로 스니커 수집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 제가 운영하는 로종 카페에서 소위 드림 슈즈들을 고객님들께 빌려 드리고 있습니다. 단 하루라도 제가 사랑하는 신발을 제 것으로 하고 잠드는 게 제 어릴 적 꿈이었거든요.


Q.  나이키 포스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A.  무엇보다 예쁘고 기능성이 좋아요. 기능성이 좋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계실테지만, 에어 포스 원은 분명 기능성이 좋은 모델이에요. 1982년 나이키에서 처음으로 만든 ‘에어솔 농구화’였던 에어 포스 원은 이후 발표된 ‘에어 조던 1’에 비해 솔의 두께와 쿠션의 깊이감이 훨씬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최신 농구화들이 기능성이 더 좋은 것은 사실이죠. 다만 에어 포스 원 또한 푹신하지 않다뿐이지 충격으로 부터 발을 여전히 잘 지켜주는 농구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능에만 충실한 요즘의 농구화는 스포츠 웨어 이외 아무 옷에나 다 어울리는 신발들은 또 아니거든요. 스포츠 웨어부터 캐쥬얼 등 어떤 옷에 받쳐 신어도 잘 어울리는 클래식 디자인이자 신발이 가진 기능적인 부분도 기본은 하는 모델은 ‘에어 포스 원’ 뿐이 아닐까요?(웃음)


Q.  나만의 의미있는 포스를 꼽자면 그리고 선택한 이유를 소개 부탁한다


A.  제 딸은 자폐아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딸은 여덟 살이 된 올해까지도 말을 하지 못하고 발달이 느립니다. 그러던 어느날 딸 수아를 담당해주던 어린이집 담당 교사에 의해 아동 학대, 폭행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딸의 자폐 증세는 더 심각해졌고, 충격에 수아는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이상 행동도 보였어요.


 불안감, 실패감, 거절감에 세상과 완전히 단절을 택한 딸을 위해 흰색 ‘에어 포스 원’ 미드를 주고 원하는 색상으로 색을 칠해 보도록 권했습니다. 딸에게 무언가 성취감을 주고 싶었던 거든요. 하지만 딸은 걱정에 쌓였는지 했는지 두려워하며 3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던 수아가 용기를 내어 ‘에어 포스 원’ 미드 화이트에 페인트를 뿌리기도 하고, 바르기도 하며 자신만의 ‘에어 포스 원’으로 커스텀을 했습니다. 저는 그 ‘에어 포스 원’ 미드 커스텀 모델을 신고 수아에게 말해줬어요. “수아야 아빠는 세상에서 이 신발이 제일 예쁜 것 같아” 사람 눈을 쳐다보지 못하던 수아는 조용히 뒤돌아 혼자 웃었어요. 이후 수아는 제 방에 자주 찾아와 자신이 커스텀한 ‘에어 포스 원’을 한참 바라보다 씩 웃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한 일이 ‘맞거나 혼나야 하는 일’이 아니라 ‘아빠가 기뻐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던 것 같아요.


수아는 조금씩 자존감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사람 눈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수아에게 한 커스텀 업체 사장님이 화구 세트를 보내주었습니다. 수아는 그 화구 세트를 받고는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화구 세트가 너무 좋아서 수아는 밤을 새우며 춤을 추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때 수아가 그린 티셔츠가 있었습니다. 검정색 티셔츠 위에 퍼플색 페인팅을 직접 조색해서 그린 티셔츠였는데, 스니커하우스 카페 커뮤니티 회원님들이 그 티셔츠를 너무나 사랑해주었고 또 정식 발매 요청을 해주시기도해서 이번에 결국 그 티셔츠가 ‘언더마이카 X 로종’ 콜라보 티셔츠로 정식 한정 출시되게 되었습니다. 수익금 중 일부는 자폐아를 위해 기부하게 되는데… 사실 꿈만 같아요. 아직 우리 수아는 여전히 말을 못하고, 자폐와 싸우고 있는 아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다 어린 나이에 ‘의류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자폐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께 조금이라도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 ‘시작'이 된 에어 포스 원 미드 수아 커스텀 모델을 가장 좋아합니다.

Q.  구하지 못한, 신고 싶은 포스(또는 스니커즈)가 있다면


A.  모든 신발을 ‘신기 위해’ 구입합니다. 제 사이즈에, 아직 신을 만한 상태의 1982년 오리지널 에어 포스 원 하이탑은 아직 구하지 못했어요. 공교롭게도 에어 포스 원과 저는 1982년 동년생입니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부분이 있는데, 언젠가는 꼭! 1982년 오리지널 에어 포스 원 하이탑 모델을 구입해서 신고 다닐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40주년을 맞이한 나이키 포스.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 했고, 큰 이슈를 끌었던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 또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았다. 그간 협업 포스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A.  기억에 남는 모델을 꼽자면 02년 ‘HTM 에어 포스 원’ 모델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2002년 ‘마크 마커’는 ‘후지와라 히로시’에게 “당신이 나이키와 협업을 하게 된다면 무얼 하고 싶은가?”라고 물었고, 이에 ‘후지와라 히로시’는 “좀 더 고급스러운 신발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 ‘후지와라 히로시’, ‘팅커 햇필드’, ‘마크 파커’가 힘을 모았죠. 그리곤 그들 자신의 이름의 앞 글자를 따 이 프로젝트를 ‘HTM 프로젝트’라고 명명 했고, 결국 ‘후지와라 히로시’의 바람처럼 높은 퀄리티를 가진 에어 포스 원 로우 콜라보 모델이 탄생하게 됐죠.


제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한명인 ‘후지와라 히로시’는 ‘에어 포스 원’이라는 아카이브 모델을 고급스럽게 재해석했고, 이후 14년에는 ‘에어 조던 1’을 또 다시 고급화시키며 ‘에어 조던 1’ 리마스터링 시대를 열게 되었죠. 멋진 ‘에어 포스 원’ 모델들이 많이 나왔지만, 협업 모델에 대해 이야기기를 나눌 때면 ‘HTM 포스’와 중심에 있던 ‘후지와라 히로시’가 항상 떠오릅니다.


Q. 포스 이외 나이키의 다양한 모델에도 관심이 많아보인다. 포스만큼 관심 가지는 모델은 무엇인가


A.  마이클 조던은 은퇴 이후 인터뷰에서 “리그가 싫어해서 경기 중에 ‘에어 조던 1’ 브레드 모델을 신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이 신발을 통해 남들과 조금 달라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힌 적이 있어요. 늘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억눌려 살았던 제 생각을 완전히 부수는 인터뷰였고 삶의 방식을 바꿔주었어요.


이후 조던이 1985년 올스타 전에서 슬램덩크를 하기 위해 사이드 라인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영상 속 ‘에어 조던 1’ 브래드 모델의 색상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다들 흰색 신발을 농구화를 신는게 보편적이 였던 당시 그 신발은 매우 도전적이고 반항적이고 혁명적이었던 겁니다. 조던의 인터뷰와 그 슬램덩크 대회에서의 모습은 제 마음 속 깊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가끔 지쳐서 남이 되고 싶을 때 마다 ‘에어 조던 1’ 브레드 1985년 오리지널 모델을 꺼내 보곤해요.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남들과 달라도 돼’라고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에어 포스 원을 제외 한다면 많은 에어 조던 시리즈들 중 ‘에어 조던 1’을 정말 가슴 깊숙이 사랑하고 관심가지고 있습니다.


Q. 다양한 신발을 신고 컬렉팅을 하고는 한다. 박스부터 신발관리까지 나만의 팁이 있다면


A.  저는 오리지널 슈트리나 별도로 판매되는 슈트리를 사용하지 않아요. 해당 모델의 완벽한 라스트가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는 신문지를 잘 구겨서 슈트리로 사용합니다. 신문지는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고, 신발의 모양을 효과적으로 잡고 유지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또한 습기도 냄새도 잘 잡아주죠. 가죽 신발의 경우는 가죽 크림을 이용해 관리하고, 아웃솔이나 고무, 플라스틱의 소재에는 경화방지제(유연제)를 정기적으로 발라주며 경화를 늦춰 줘요. 그리고 보관만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신어주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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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니커즈의 붐과 함께 리셀 플랫폼의 활성화, 슈테크 등 다양한 경로에서 컬렉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A.  리셀 역시 스니커즈 문화의 한 일부분이라는 측면에서 저는 ‘리셀러’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신지도 않고 리셀만 하는 사람은 나빠’라고 말하는 대신, 그들에게 ‘신발이 얼마나 재미있는 취미이고 문화’인지. 그리고 그 신발 안에 숨은 스토리가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들려주고 그들이 신발을 정말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신발에 대한 스토리나 칼럼 등도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제가 운영하는 로종 카페에서 신발을 대여해주는 이유 역시 그렇게 해서라도 실착을 하는 비중을 한 명이라도 더 늘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스니커붐 속에서 제가 할 일,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게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착러’이자 ‘슈토리텔러 (슈+스토리텔러)’로서 많은 이들에게 신발 문화를 더 널리 알려드리고 싶네요. (웃음)


Q.  성락님에게 포스란?


A.  <시작>입니다. 나이키의 ‘에어 농구화의 시작’이며, 제가 태어난 년도와도 같으니 ‘제 인생의 시작’이기도 해요. 그리고 제 딸 수아의 첫 커스텀 작업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에어 포스 원은 늘 ‘근본’이고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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