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ewal ORAEGAGE


<새단장한 오래가게를 둘러보며>

어째서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필름 감기는 소리와 손끝으로 전해지는 셔터의 촉감, 작은 기계가 작동한다는 감각이 온전히 전해진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좋은 것은 뷰 파인더에 잡히는 풍경이다. 맑은 날이면 카메라를 챙겨 동네 산책을 나선다. 날씨에 이끌려 걷다보면 평소보다 조금 더 먼 곳에 도착한다. 



어린 시절부터 쭉 보아온 가게들을 지나친다. 어떤 가게는 그 모습 그대로, 어떤 가게는 자리를 옮기거나 수리를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물론 사라지는 가게들도 있다. 하나하나 기억하고 싶단 마음으로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낸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부서진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갈 만한 곳을 찾는다. 정독 도서관을 따라 걷다보면 아원공방이 보인다. 쇼윈도 안쪽으론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천장에 매달려 천천히 흔들리는 소품과 작은 그릇에 개구리, 방 한 편에 세워두고 싶은 수반과 화병까지 눈길 가는 것들이 많다. 산책길이면 꼭 한 번씩 들리게 되고 작고 귀여운 소품 앞에 멈춰 한참을 고민한다.

2층으로 올라가 전시를 관람한다. 흰 벽을 따라 젊은 작가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어느새 땀이 식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고민했던 소품 앞을 서성인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40년의 세월을 지켜온 공방은 항상 세련된 모습이다. 2011년부터 문을 연 지금의 북촌 공방은 더더욱. 이대로 힘이 닿는다면 창덕궁 근처 아원 공방까지도 걷고 싶었다. 카메라를 꺼내 아원공방 주변의 풍경을 담았다.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을 땐 늘 을지다방이 떠오른다. 여름 을지로 하면 당연히 을지다방과 을지면옥이었고 두 가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굉장히 아쉬웠다. 새로운 위치에 자리 잡은 을지다방은 그런 아쉬움을 씻어준다. 입구부터 내가 알던 바로 그 분위기다. 마치 매일 봐온 사람처럼 반겨주시는 사장님과 오래된 물건들 때문에 안심한다. 

 


자리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주문한다. 을지다방에선 여름엔 아이스커피, 겨울엔 쌍화차를 마셔야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아이스 라떼도 아니다. 사장님은 언제나 레시피는 비밀이라고 강조한다. 적당한 단맛이 몸 구석구석 전해진다. 더워, 라는 단어뿐이었던 머릿속이 맑아진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아직 남아있는 주말 동안 무얼 할지 고민한다. 새롭게 자리한 을지다방을 남기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한 기록이 될지도. 



을지다방 바로가기


고민의 결과는 푹 쉬자. 시원한 에어컨과 맛있는 간식이 필요하다. 따릉이를 타고 을지로에서 더 아래로, 장충동 방향으로 향했다. 장충동에 도착하자 탁 트인 시야와 태극당 건물이 나를 반겼다. 태극당은 천국이다. 입구부터 고소한 버터향이 풍긴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디저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고등학생 시절 방문했던 태극당에서 처음 알았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빵을 고른다. 단팥빵과 야채 사라다는 당연하고 메론빵을 담는다. 모나카 아이스크림은 계산대에서 찾는다. 진열된 빵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베어 문다. 부드러운 단맛이 입안에 스며든다. 아이스크림은 잠깐 머물다 사라지겠지만 이 맛이 나에게 닿기까지는 긴 과거가 있었을 것이다. 뷰파인더 너머로 빵들이 보인다. 각자의 온도에서 각자의 맛으로 구워졌을 빵들. 그 온도와 맛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을 태극당을 눈에 넣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산책 코스를 다시 반대로 거친다. 아직 몇 장 남은 필름을 마저 채워야한다. 한 정거장 일찍 내려 조금만 더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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