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는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많은 벽이 존재했다. 옷은 계급의 상징이기도 했고 인종의 상징이기도 했고 소속 집단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옷을 나와 남을 구별짓기 위해 입는다. 나와 남 사이에 벽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패션의 역사는 이러한 벽을 끊임없이 뛰어넘어왔다. 오늘의 글은 끊임없이 문화라는 벽을 뛰어넘는 브랜드, 반스(Vans)와 함께 패션의 역사를 돌아보고자 한다.
100년, 아니 200년, 혹은 그 이전의 옷들은 어떠했는가? 그때 대중들에게는 패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중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찼다. 다음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에 의복은 그저 추위 혹은 비바람을 막아줄 정도의 기능을 하면 충분한 그런 것이었다. 그때의 패션은 주안점은 왕가에 그들의 상품을 납품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긴 역사를 지닌 브랜드들 중에서도 이러한 브랜드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벨루티, 존롭, 에르메스와 같은 브랜드들이 왕가에 납품을 했던 곳이다. 당시에 왕가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제품들은 귀족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귀족들은 왕족들이 사용하던 제품들을 따라서 사용했다. 그렇기에 왕가에 납품한다는 사실은 곧 그들의 상품을 상류층들에게 판매할 역치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왕족으로부터 상류층에게로 흐르는 역치의 벽이 무너지고 귀족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를 향유한다. 그에 따라 패션계의 타깃이 왕족에서 귀족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역점에 있는 인물이 ‘찰스 프레데릭 워스(Cahrles Fredrick Worth)’이다. 1858년 ‘뤼 드 라 페(rue de la paix)’에 오픈한 그의 부티크가 오늘날 패션이라고 부르는 것의 시작이다. 그가 최초로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부티크는 왕족이 아닌 상류층을 대상으로 옷을 제작하였다. 찰스 프레데릭 워스를 시작으로 이후 그 타깃을 왕족으로부터 상류층으로 확장한 부티크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 폴 푸아레(Paul Poiret), 엘자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과 같은 인물들이 개점한 부티크들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였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유명 패션 하우스의 창립자들, ‘피에르 발망(Pirerre Balmain),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 시기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 시기이다. 이때 패션에 대중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중들이 그들의 생계 그 이상의 소비를 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기에 대중들은 상류 문화를 모방한다. 그렇게 유명 디자이너들의 수많은 모조품과 유사품들이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출시되고 대중들은 이러한 제품들을 즐겼다. 이러한 상위 문화에서 대중 문화로 흐르는 적하 효과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자라(Zara), H&M 혹은 길거리 옷 가게에 들어가 보면 유명 패션 하우스에서 본 듯한 옷들을 더러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패션계의 적하 효과는 자본주의와 미국의 성장으로 인해 일대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자본주의의 성장은 점점 모든 사람들의 관점을 돈에 맞추게끔 하였고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대중들은 소비여력이 증가하였다. 수입의 증대는 대중들에게 단순히 상위 문화의 모방이 아닌 상위 문화를 일부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미국은 그들의 소비의 주체를 대중으로 인식하고 더 많은 이들이 소비할 수 있는 제품들을 양산하였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지닌 것이 자본주의의 성장과 맞물려 전 세계의 소비의 주역을 상류층에서 대중들로 변화시켰다. 그렇게 패션계에서는 컨버스, 챔피온, 리바이스, 반스 등과 같은 대중들을 주요 소비층으로 삼은 브랜드들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OFF THE WALL
이러한 일대의 전환기 속에 성장한 브랜드들 중 반스(Vans)는 단연코 괄목할만한 브랜드이다. 오늘날 반스는 대중문화의 일부라고 여길 만한 브랜드이지만 그들의 출발은 달랐다. 1966년 캘리포니아에서 그들의 출발을 맞이한 반스는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지속된 베트남전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대두된 사회 반항 문화에 편승한다. 당시의 스케이트보드, 그래피티, 힙합과 같은 사회 반항 문화가 성장하는 가운데 반스는 스케이트 보더들을 그들의 주요 타겟으로 삼는다. 일전에 하위 문화에 불과했던 이들은 베트남전의 영향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반스도 주목을 받았다.
이때 토니 알바(Tony Alba)와 스테이시 페렐타(Stacy Peralta)라는 유명 스케이트 보더가 ‘OFF THE WALL’이라는 문구를 만들어주고 이는 그들의 슬로건이 된다. 이러한 시류와 만나 반스의 ‘OFF THE WALL’이 시작된다. 반스는 시대적 조류와 함께 단순한 스케이트 보드라는 하위문화를 넘어서 대중 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
반스의 ‘OFF THE WALL’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반스는 오늘날 패션계에서도 또 다른 벽을 넘었다. 자본주의의 성장은 대중들에게 더 많은 소비의 여력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브랜드들이 더 많은 판매에 역점을 두게끔 하였다. 이러한 대중들이 많은 브랜드들에 더 큰 수익을 가져다 주자 하이엔드 브랜드들조차 늘어나는 대중들의 소비여력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위에서 아래로 향하던 물의 흐름에 역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이엔드 브랜드들은 대중 문화로부터 디자인을 차용해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OFF THE WALL’이 시작된 것이다. 자라에서 하이엔드 브랜드의 디자인과 유사한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이엔드 브랜드들에서도 대중적인 브랜드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스의 성장은 하위문화로부터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에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상위 문화에도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디자인은 많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에 영향을 준다. 루이비통(Louis Vuitton)에서는 트로카데로 리슐리외(Trocadero Richelieu), 아미리(Amiri)에서 출시되는 반스의 에라(Era)와 슬립온(Slip-On)에 기반해 나오는 모델들, 피어오브갓(Fear Of God)의 101 스니커즈,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Maison Mihara Yasuhiro)의 오리지널 솔(Original Sole) 등 정말 많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반스 스니커즈의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제 반스는 단순히 저렴한 브랜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니다. 상위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일방향적으로 흐르던 낙수의 흐름을 바꾼 브랜드이다. 반스는 스케이트 보더들과 함께 길거리의 벽들을 뛰어넘었지만 시간이 흘러 그들은 대중들과 함께 문화의 벽까지도 뛰어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