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WILL WE FALL TO THE GROUND
우리는 어떻게 멸망할 것인가
  이러다 멸망하는 것이 아닐까. 징조가 나타나고 가장 작은 곳부터 붕괴하는 세상. 요즘은 특히나 그런 상상을 한다. 일일확진자를 체크하고, 마스크를 챙기고, 수시로 소독제를 사용한다. 새롭게 추가된 일상은 당연하면서도 낯설다. 다시 멸망을 상상한다.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그렇다면 식량은, 대체 무얼 타고, 누구와, 가족들은. 희망이라고는 없는 물음들이 앞선다. 마주하기 전까진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배제하긴 힘들다. 이전 세계의 가치는 전복될 것이고, 루틴을 뛰어넘어 또 다른 질서가 생길 것이다. 무너진 세계에 던져진 우리에게 남을 가치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가족과 우정? 사랑과 평화? 그런 소년만화 같은 이야기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 김미월

 

  그럼에도 사랑의 순간은 있다. 대학 동기 모임에서 실컷 술을 퍼마신 다음 날 멸망이든 종말이든 아무튼 세상이 끝장난다면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시작된다. 태양계 외부의 행성들 중 하나가 지구로 돌진해오고 그것은 인류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예정된 일이다. 잠에서 깨 멸망 소식을 접한 ‘나’는 식탁 위에 놓인 복숭아 통조림을 발견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복숭아 통조림에 그녀의 입에는 침이 고인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멸망 예보는 아수라장을 불러일으킬 것 같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의 세계는 그냥 그렇다. 정말로 그냥 그런 것인데 멸망 안부 차 딸에게 전화한 부모님은 고추밭에 고추를 따러 나가고, 아랫집 여자는 태연히 아이스커피를 권한다. 물론 소소하게 타인을 속이는 소악당 정도는 있지만 폭동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복숭아 통조림과 함께 짧은 산책을 읽다보면 묘한 평화가 찾아온다. 취업, 생계, 인간관계에서 한 발짝 떨어진 그런 안도감. 단편 소설이지만 분량보다 훨씬 긴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멸망 직전 내 앞에는 어떤 음식이 있을지, 나는 누구와 함께 할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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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어 히어로』 - 하나자와 켄고

 

  『보이즈 온 더 런』과 『르상티망』으로 유명한 하나자와 켄고의 작품이다. 평범하고 소극적인 남성을 그리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이니 만큼 『아이 앰 어 히어로』에서도 그런 남자가 살아남는 방식을 그린다. 그런 남자는 바로 실패한 만화가 히데오. 좀비로 가득한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과 굉장히 현실적인 배경묘사가 인상적이다. 지극히 소시민인 히데오의 여정은 액션 블록버스터와 거리가 멀다. 육체적 강력함을 지닌 좀비 앞에서 허용된 무기는 배트와 칼, 서바이벌 게임용 에어건에 운이 좋으면 사냥용 샷건 정도. 무자비하게 좀비를 때려잡는 인물은 어디에도 없다. 생존 앞에서 가족과 연인은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닐지도. 히데오는 의외로 생존에 재능을 보인다. 그가 망상에서 빠져나와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재미가 시작된다. 애초에 그에겐 세상을 구한다는 거창한 목표도 없다. 그렇다면 스스로 히어로라 칭하는 제목의 이유는 무엇일까.

 

  좀비를 다룬 창작물은 너무나 많다. 그만큼 나올 얘기는 대부분 나왔다는 뜻이고 『아이 앰 어 히어로』 역시 아주 특별한 지점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다만 지극히 현실적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멸망해가는 세계의 공포를 우리 가까이로 끌어당겼단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멸망이란 거대한 이벤트 앞에서 어떤 사명도 없이 그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하는 것이 현실의 우리일지도 모른다. 나 하나 챙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좀비가 된 지인을 마주치더라도 과감한 결단을 내릴 것. 결말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아이 앰 어 히어로』는 만화카페에서 한 번 쯤 집어들만 하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멸망은 소설과 만화로 충분하다. 오늘 하루도 역시 아무런 징조가 없다면 모처럼 편히 잠드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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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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