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팬데믹의 공간 ep.03
날개가 없어도 폭죽은 터진다 : 문래동

  연속되는 이미지와 이야기로 공간은 기억된다. 개인마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한도가 있다. 하지만 감각으로 결부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냄새와 소리를 포함한 감정을 뒤흔드는 각종의 장치가 존재할 것이다.


  쇠가 타는 냄새가 공간을 메운다. 불꽃이 일고 연기가 동반된다. 고열의 쇳가루가 이리저리 튀며 바닥에 닿아 차갑게 식는다. 그 순간은 긴 시간이 아닌 찰나이다.

밤이 되면 주택단지에서 아이들이 하나 둘 나온다. 길가를 밝히는 등은 온전히 살아있지 않다. 골목에서 이어지는 골목으로. 다시 새로운 골목에서 낯익은 골목으로 술래잡기가 시작된다. 저 친구는 경찰이고 이 친구는 도둑이다. 우리는 약속된 정체성 안에서 서로를 잡고 피하기가 반복된다. 땅에 굴러다니는 주물을 조심해야 한다. 튀어나온 파이프를 잘 뛰어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져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숨을 고르기 위해 등을 기댄 셔터는 굳게 닫혀있는 것만 같다. 안에서 쇠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면 더 멀리 도망친다. 무서운 아저씨가 튀어 나온다, 아저씨가 튀어 나온다 …… 소리가 멀어지면 남는 건 쇠가 잘리는 소리다.

시간이 흐르며 벽에 붙은 타일들은 하나 둘 떨어진다. 언젠가는 하나도 남지 않고 시멘트만 남은 벽이 될 수도 있다. 수 많은 손들이 쉬지 않는 노동으로 만들어낸 공간은 언제든 일하는 냄새가 난다.


  잡는 손과 주무르는 손은 소란스럽지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내리치는 손과 들어올리는 손은 땅을 울린다. 진동은 작업대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그 밑 땅으로. 땅이 울리면 미세한 진동으로 모든 벽이 일제히 부르르 떨린다. 사람의 신경으로는 감각할 수 없을 지 모른다. 모든 벽은 함께 일하고 있고 그것이 모여 공간이 된다.

  어지러운 평일 해가 떠 있는 시간대의 문래동은 열심히 일하는 손을 볼 수 있다. 한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시간의 연속은 흘러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낮의 손과 밤의 손으로 이분된 것이다.


  연결된 지류는 큰 강이 된다. 알지 못한 채 지나버린 시간은 없다. 알고도 지나가버린 것이다. 시간은 건축물에 묻는다. 잘 개어낸 물감을 칠한 것처럼 깔끔하고 섬세한 손길로 발라 우리는 자각하기 어렵다.


  낮의 손과 밤의 손은 서로의 시간을 분명히 지키고 있다. 같은 길에 존재하더라도 해가 지구의 반대편으로 향하고 난 다음, 가로등이 껌뻑껌뻑 눈을 뜰 시간이면 새로운 손들이 등장한다. 공간은 잠을 자지 않고 매일을 지낸다.


  벽 위엔 그림들이 그려져있다. 온전한 벽화보다는 군데군데 뜯어지고 덧칠된 것들이 많다. 낮의 손들은 투박하지만 하루를 또 보내기 위해 그것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쇳 소리와 뜯어지고 끊어지는 소리 가운데에서 사뭇 다른 손들은 꾸준히 시간을 할애하며 공간에 존재한다. 찢어진 틈 사이에서 사람들이 만난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쇠퇴기를 겪으며 재생이 시작되고 있는 공간은 여러 문제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임대료가 낮아 모이기 시작한 공간은 꾸며지고 모여지는 탓에 다시 임대료가 상승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밤의 손과 낮의 손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인다. 그들의 손 모양에 따라 공간이 축조되고 있다. 위에서 하나를 얹고 한 번에 와르르 넘어지지 않게 끔 하나를 더 조심스럽게 올린다. 번갈아 행동하는 손들로 오늘도 여러 냄새와 텍스쳐가 새롭게 건축된다.

"연장을 잡으면 생기는 굳은 살이 있다."



잡으면 잡은 대로 손은 변한다. 때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단단한 힘은 그것을 변하기 보단 잡은 손이 변할 수도 있다. 손은 생각보다 여리고 쉽게 변한다. 늘 잡았던 것을 못 잡게 되는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



"손이 부들부들해지면 일을 좀 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거칠어져 있는 상황이 더 편안하다."



날개가 없어도 폭죽은 하늘로 날아 올라 터진다. 터지는 빛깔은 형형색색이지만 그 공간을 메우기에 충분하다. 불꽃은 늘 타오른다. 불꽃을 만지는 손과 그 공간을 이루는 손들은 늘 자리에 존재하며 쉴 세 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문래동의 시간은 밤과 낮이 반복된다.


Editor  오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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