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지속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이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다. 제한되고 변화된 환경 속에서 생겨난 경험 해보지 못한 아픔 앞에서 우리는 무력해진다.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 감각될 땐 바다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바다로 떠난다.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 도착 한 밤바다는 어둡다. 사방에서 파도 소리가 들린다. 몇 발자국을 걸어가면 내 신발이 젖어버릴지, 커다란 포말에 사로잡혀 버릴 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목도리를 여미고,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그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처음엔 추웠고, 물보라 탓에 젖은 바닥이 신경 쓰였다. 자리 지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가 고프고, 아직 다 보지 못한 책이 떠올랐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고 전화하고 싶었지만,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탓에 그만두기로 했다. 무엇이 나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바다가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쪽을 바라봤다.
얼굴에 닿는 물기와 짠 내가 느껴졌다. 동해는 서해보다 짜다. 유입되는 민물의 양이 더 적어서라고 어느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방해받지 않는 바다를 상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고 싶었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서 내가 보고 있던 곳을 밝혔다. 삽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넓은 모래벌판 한가운데에 박힌 채로 서 있었다. 나보다 바다에 더 가까운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삽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뒤로 돌아 육지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삽을 생각했다. 자리를 지키는 삽. 박혀 있는 삽. 서 있는 삽. 기울지 않고 누군가가 방해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있을 삽. 우리는 지금 자리를 지키기도 힘든 시간에 서 있다.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의미를 두는 순간 너무 큰 짐이 될지도 모른다. 짐을 덜어내는 방법들을 골몰하는 과정은 힘들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뱉지 않는다. 밤 산책을 나갈 채비를 한다. 뱉어내는 건 미뤄둬도 상관 없다. 넘어지지 않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문 밖으로 나간다.